자비량 목회 허용의 신학적 정당성 확보

자비량 목회 허용의 신학적 정당성 확보

[ 8월특집 ] 이 시대의 ‘텐트 메이킹 목회’를 말하다 1. 자비량 목회의 성경적 신학적 제언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23년 08월 11일(금) 07:08
자비량 목회의 성경적 신학적 제언



성경에는 오늘날 자비량 목회와 유사한 사례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창세기에는 아담과 가인과 노아가 농부로 묘사되고, 아벨과 아브라함은 목자로 소개된다. 출애굽에서 사사시대까지를 살펴보면, 모세는 애굽왕궁의 후원, 장인의 가축을 치는 목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공급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여호수아는 딤나를 건설한 건축사이고, 기드온은 밀 타작을 하는 농부로 묘사된다. 또한 예언자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는 세속직이 보다 다양해진다. 아모스는 농부이고, 에스겔과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계보로 예루살렘 성전 조직에 의해 후원을 받으며, 다니엘은 귀족 출신으로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 바벨론 정부에 의해 후원받는다. 또한, 호세아는 상인으로 추측되는데, 그것은 그의 부친이 빵 굽는 상인이어서 그가 부친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시대, 즉 에스라 시대부터 신약 시대까지에는, 유대 서기관들의 삶이 주로 자급자족으로 설명된다. 그들은 율법 교사 및 종교 문제를 재판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 역할로부터 급여를 받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러므로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지 않는 한, 서기관들은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세속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 바울이 가급적 교회들로부터의 재정 후원을 거절한 이유도 당시 세속직을 통해 자신의 재정을 충당했던 서기관들의 모습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및 사도 바울의 사례를 현시대 목회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신구약에 나타난 다양한 사례는, 비록 시공간적, 맥락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시대 자비량 목회를 긍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비로 볼 수 있다.

자비량 목회의 허용 여부와 관련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으로 요약된다. 1) 만인제사장직(온 성도 제사장직)에 근거하여, 목회자에 대한 칼뱅의 관점이 자비량 목회의 허용 여부를 판단할 만한 결정적인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 불가 입장,' 2)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특별 직제에 속하는 목사직은 원칙적으로 교회 중심의 목회 사역에 전념하는 것이지만, 특수한 상황의 경우에는 선교적 차원에서 자비량 목회 가능성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판단 유보 입장,' 3) 직업소명설, 만인제사장직, 및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근거하여, 성직과 세속직의 경계가 사라진다면, 목사가 이중소명을 받아 목회직과 세속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허용 입장.'

위의 세 가지 입장은 각각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1)은 만인제사장직 개념을 현시대 자비량 목회 허용 여부의 지침으로 삼을 수 없다고 봄으로, 자연스럽게 현 상태(전임제 목회) 유지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입장이며, 2)는 목사직 이해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교회 중심의 목회 사역' 및 '선교적 차원에서 자비량 목회 가능성,' 이 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 이중직 목회의 허용 가능성에 어느 정도 개방적인 입장이고, 3)은 종교개혁 정신에서 자비량 목회를 금지할만한 논거를 찾을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자비량 목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중세 당시에 영적 계급에만 사용하던 '소명' 개념을 세속직에도 동일하게 사용함으로 목사직과 세속직의 구별을 폐지했고, 목사직이 세속직에 비해 특별한 우위를 점유한 것이 아님을 천명했다. 이렇게 루터에 의해 확장된 소명 개념을 바탕으로, 현재 서구교회에서는 세속직을 수행하던 자가 신학 과정에 입문하여 목사직을 준비하는 것을 소명으로 수용하듯이, 목사직을 수행하던 자가 목사직 수행의 임무가 종결되었다고 확신하고 다시 세속직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도 소명으로 인정한다. 서구교회의 이러한 목회직에 대한 유연한 인식은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라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어쨌든, 영적 계급에만 적용되던 소명 개념을 세속직으로 확장한 루터의 주장은 분명 자비량 목회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한다.

한편, 칼뱅은 일반교역에 비해 특수교역을 강조하는데, 이는 일반교역에 대한 특수교역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 유지 차원에서 목사직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수교역에 대한 칼뱅의 강조를 자비량 목회를 거부하기 위한 논거로 삼을 수는 없다. 또한, 칼뱅의 직업소명설은 이중소명 혹은 다중소명 개념과 연결되며, 이와 관련하여 '소명의 공시적 다중성'(한 성도가 동시에 여러 소명을 받음)과 '소명의 통시적 다중성'(한 성도의 개별직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 있음) 개념이 제기되는데, 이런 이해는 자비량 목회의 긍정성을 주장하는 데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다중소명의 고전적 사례는 종교개혁자 루터이다. 그는 파트타임 목수였고, 삭소니 공작의 후원을 받았으며, 아내와 함께 채소 경작, 과수원 농사, 가축 치기, 맥주 양조, 숙박업, 농장 경영 등의 세속직을 감당했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았음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모든 성도는 선교사이고, 모든 성도의 일터는 선교지이다. 이런 인식은 목사직과 세속직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개인이 다중소명을 받을 경우, 목사직과 세속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비량 목회 역시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 결론적으로, 신구약에 나타난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만인제사장직, 직업소명설, 및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관한 검토를 종합하면, 자비량 목회 허용의 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중직 목회가 한국교회에 정착될 때까지는 목회윤리 혹은 직업윤리 차원에서 자비량 목회자에게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중직 목회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마련 및 사전교육 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김승호 교수 / 영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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