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회복을 꿈꾸며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회복을 꿈꾸며

[ 논설위원칼럼 ]

유재봉 교수
2023년 04월 24일(월) 08:51
해마다 4월이면 어김없이 부활절이 찾아온다. 부활절의 의미는 인간의 삶에서보다 자연의 모습에서 더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부활절을 전후하여 겨우내 움츠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들은 어김없이 저마다 연한 푸른 잎을 내밀고, 각양각색의 꽃을 피우며 향기를 뿜어낸다. 자연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생명의 부활이 어떤 것인가를 화려한 시청각을 동원해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주위의 나무마다 연한 싹이 나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디어진 감성이 꿈틀거리게 되고, 생명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생명에 가득 찬 자연의 모습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더욱 부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4월의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생명이 움트고 있기 때문이듯이, 인간도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영위할 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부활절 즈음에는 잠자고 있던 자신의 영혼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사회 도처에 생명을 살리는 일이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이 일은 가정, 교회, 학교, 사회가 '생명이 주는 아름다움의 회복'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협력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는 일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가정이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는 모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학교는 그 모를 잘 자라게 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도록 하는 곳이다. 생명력 있는 인간다운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가정은 건강하고 건전해야 하며, 학교도 교육공간으로서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과 학교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생명을 살리고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는 일보다는 자신의 자녀와 학생이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하여 더 나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는 데 있다. 가정은 훌륭한 인성을 갖춘 인간을 형성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곳이어야 하며, 학교는 다양한 교과의 가치를 내면화함으로써 전인을 형성해야 한다는 교육적 이상은 이제 구호로만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가정과 학교는 사회의 악영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설치해 놓은 간이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치움으로써 입시 공부와의 전쟁터가 되었다. 가정은 더 이상 자녀들이 편히 안식하는 공간이 아니며, 학교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함으로써 추억을 쌓고 우정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가정과 학교는 생명을 살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보다는 더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친구가 아닌 서로 견제하고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등 인간다움을 상실하고 점차 사람을 메마르게 만드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생명이 있을 때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교육도 사람을 살리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때 아름다운 법이다. '학교가 하나 문을 열면 감옥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만일 가정이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고 대화가 넘치는 안식처가 된다면, 그리고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 균형 잡힌 인성을 갖춘 인간을 길러낸다면, 범죄와 폭력 등이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교육의 두 축인 가정과 학교가 제 기능을 회복하여 생명을 살리고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는 교육의 장으로 회복되어, 그리스의 속담이 우리나라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유재봉 교수 / 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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