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입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입니다"

[ 논설위원칼럼 ]

김경진 목사
2023년 03월 27일(월) 08:40
사순절에 예수님의 수난극을 관람한 한 부부가 있었다. 연극을 보며 큰 감동을 받은 그들은 공연이 끝나자 무대 뒤로 가서 예수 역할을 한 배우를 만났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극 중에서 배우가 지고 갔던 십자가를 발견하고 아내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그는 예수님 흉내를 내며 어깨에 그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런데 십자가가 너무나 무거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속이 텅 빈 것인 줄 알았는데, 이게 왜 이렇게 무겁죠?" 그때 배우가 답한다. "만일 무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이다. 그 무거움은 고통의 무게이다. 무겁지 않은 것은 십자가가 아니듯이 무겁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가벼운 것이 십자가가 아니듯이 가벼운 것은 삶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정호승 시인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면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고난의 길에서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무거운' 십자가였다. 주님의 십자가에는 삶의 무게, 고난의 무게, 죽음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고뇌, 애통, 번민이 숨어 있었다.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주님은, 때때로 '신'이심을 철저히 은폐하셨다. 대신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공감하셨고, 사랑하셨고, 그것으로 '충만'하셨다.

최근 한 방송에서 방영된 이단 관련 다큐멘터리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사이비 이단 교주의 악행과 만행이 고발되면서, 개신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살도 찌푸려진다. 하지만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비단 사이비 이단 교주들만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창3:6) 탐스러운 열매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을 '욕망'이라 부른다.

욕망.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상태이다. 더 갖고, 더 먹고, 더 올라가야만 하는 상태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욕망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대체물(제)을 바꿀 순 있지만, 욕망의 불을 끄지는 못한다. 자신을 이상화 해주는 시선에 매료된 현대인의 얼굴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착각한 하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렇듯 욕망의 덫에 걸린 자에게는 만족이 없다. 뱀이 하와를 꾈 때도, 사단이 예수를 시험할 때도 바로 이 욕망의 덫을 이용했다. 하와는 그 덫에 걸려 넘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덫이 허울뿐임을 알아차리셨다. 왜냐하면 주님은 '인간'으로서, 이미 '충만'하셨기 때문이다.

욕망의 반대말은, '충만'이다. 이 충만의 다른 이름이 '케노시스'라 하겠다.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주님은, 도리어 부족한 게 없으셨다.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그분과 일치되셨기 때문이다. 낮아지셨기에 하나가 되셨다. 엎드리고 섬기셨기에 아버지와의 통일을 이루셨다.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어 내셨다. 그렇기에 부족함이 없으셨고, 그 자체로 충만하셨다. 그것이 케노시스며, 충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루신 '십자가의 충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우리 주님께서 인간에게 열어 주신 길이, 이 길이다. 군림하는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라, 섬기는 존재로서의 현현이다(막10:45). 그래서 십자가는 무겁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이다. 무겁지 않다면 십자가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섬김'과 '낮아짐'의 십자가이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반드시 '영광'의 십자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경진 목사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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