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새로운 유혹?

설교자의 새로운 유혹?

[ 논설위원칼럼 ]

이대근 목사
2023년 03월 20일(월) 08:43
'1주일에 몇 번이나 설교하는가?' 담임목사 1~2년 차 정도에 어떤 분이 물어보셨다. 속으로 세고 있던 나에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본은 11번이라고. 그 정도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어 그분의 위세에 눌려버렸다. 아직 담임목사로서 한참 멀었다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세어 보니 나는 그 당시에 12번에서 13번이었다. 수치상으로는 평균 이상의 설교사역을 감당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설교의 횟수로 목에 힘줄 일은 아니다.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있다. 몇 번 하냐고. 어떻게 보면 목사들 세계에서나 통하는 질문이겠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횟수에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설교를 준비했는지. 여기에도 사실 큰 관심이 없다. 물론 너무 짧게 준비했다면 기분 나쁠 것이다. 성의 없게 준비한 설교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설교를 위해 몇 시간 준비했는지 또는 몇십 시간 준비했는지. 여기부터는 목사가 아닌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했는가? 이건 목사들의 질문이다. 그것보다는, '얼마나 화끈하게(?) 설교하는가?' - 이것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들리도록 전달하려면 때로는 화끈하고, 때로는 배꼽 잡고, 때로는 절절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용 없는 설교에 그럴싸한 장식만 붙이다가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만다.

"목사는 언제나 설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항상 부담스럽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설교를 정당화한다는 염려도 있다.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평생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목사들의 숙명이겠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부담감 너머로 유혹의 손길이 보이기도 한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설교 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비교적 손쉬운 방법들이 설교자들의 근처에 있다. 특히나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chatGPT)은 설교문까지 대신 작성해 준다. 물론 인공지능으로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과 설교문 작성에 도움을 받는 것은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작성한 설교문은 이미 인터넷에 상당히 소개되고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작성한 설교문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해졌다. 그러니 이제는 설교자가 필요 없는 시대를 염려하는 분들도 있다. 또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관망하시는 분들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설교문은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설교문이다. 기본적으로 많은 자료들을 근간으로 삼기에 설교문의 구성이나 신학적인 주제들은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맞지 않기도 하고 지명이나 인명도 그럴듯하게 갖다 붙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틀린 내용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내용을 점검하지 않으면 우스꽝스러운 설교문이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설교문을 강단에서 그대로 읽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것이 설교자로서 부도덕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오히려 좋은 도구로써 사용하기 위해 연구할 필요도 있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선배들이 만든 성경주석과 신학서적들을 참고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이 만든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설교의 양이 과도한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양이 줄어든다고 해서 설교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유혹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끝까지 완주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대근 목사 / 양정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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