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대가 던지는 고민거리

챗GPT 시대가 던지는 고민거리

[ 논설위원칼럼 ]

허요환 목사
2023년 02월 20일(월) 12:52
최근에 챗(chat)GPT라는 것이 화제다. 이는 OpenAI라는 인공지능 회사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채팅을 통해 이용자와 소통을 시도한다. 왜 챗GPT가 주목을 받는 것일까? 기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빅스비,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등과 비교할 때 서비스 품질이 매우 높고 향후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해봤다. 해당 웹사이트 주소(chat.openai.com)를 입력하고 로그인을 했다. 채팅창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대략 3초 만에 이런 대답을 주었다. "인공지능인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선호하는 바가 없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다. 사람마다 미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그러니 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독특함이 있고, 그것은 사람을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만든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챗GPT가 보여준 인공지능 기술은 가히 놀랍다. 인공지능을 우습게 봤다가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대형 검색엔진 서비스와 확실히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검색 엔진은 이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반면에 챗GPT는 이용자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제시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나 과학 이론에 대한 질문도 막힘없이 답을 한다. 심지어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 대한 설교문을 요청했더니 5초 만에 아주 그럴듯한 설교문을 뚝딱 만들어 내놓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다면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할까? 꼭 그럴 것 같지 않다. 두 가지 염려를 하게 된다. 첫째는 우리의 자녀들이 굳이 긴 세월 학교에서 공부를 하려고 할까 의문이다.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연구하려고 할까? 인공지능을 통해 5초 만에 손쉬운 답을 얻을 수 있는데. 결국 인공지능은 점점 발전하고, 인간의 지능은 날이 갈수록 퇴보하다가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한때 '전능하신 네이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제는 '전능하신 챗GPT'를 섬겨야 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이 호시탐탐 하나님의 자리를 노린다.

둘째, 메신저가 메시지보다 지나치게 추앙받는 것도 염려스럽다.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헌(Marshall Mcluhan)은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주장을 했다. 경험상, 영향력 있는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메시지는 사라지고 메신저만 남는 괴상한 형국이다. 챗GPT는 메신저이다. 구글과 네이버도 메신저이다. 이들은 거대 권력이 되고,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려고 한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모습일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 아볼로, 게바와 같은 메신저를 추종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진짜 본질은 메시지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호소한다. 메신저가 메시지보다 돋보이는 현실은 기독교 신앙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맥루헌의 말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메시지가 메신저보다 중요하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진보는 우리 시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무거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늘의 지혜를 간절히 구한다.

허요환 목사 / 안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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