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 논설위원칼럼 ]

이상천 목사
2022년 11월 14일(월) 08:23
강산이 세 번 정도 변하기 전, 목회 초보시절의 어느 날,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담당하고 있는 교구의 젊은 부부의 네 살 난 외아들이 아침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다. 이송했다는 병원응급실을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시신 안치실로 들어가고 난 후였다.

사고경위는 부부는 직장 출근을 하고 할머니께서 손자를 돌보셨는데, 개인주택 낡은 철문이 삐죽이 열려있는 틈으로 장군감인 아들이 씩씩하게 아빠처럼 출근 흉내를 내면서 나갔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을 나가자마자 자동차에 치였는데 시신에는 긁힌 흔적 하나 없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이미 영혼은 떠났고, 주검만 남아있었단다.

목사인 필자는 정말 난감했다. 목사인 내가 더 낙심하고 절망했다. 이것이 무슨 경우인가?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늘 아버지, 도대체 뭘 하신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살 난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부모보다 목사인 내가 더 절망하고, 더 원망하면서, 유족들에게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도 없고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임종이고 입관이고 그 어떤 예배조차도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젊은 부부가 목사인 나를 더 위로한다. 천국만을 소망하고 있었다. "목사님, 우리가 제대로 키우지 못할까봐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신 것 같습니다. 우리 품보다 하나님 아버지 품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무슨 얼어죽을 … 아무리 천국에서 필요해도, 아무리 부모가 부족해도 네 살짜리를 왜? 무엇 때문에?' 의문이 그치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목회를 정리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아직까지도 그 때의 일은 설명도, 해석도 안 된다. 흔히들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 변장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그냥 갑갑하다.

그 갑갑함을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삭히고 있는데, 수년전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의 귀하디 귀한 고등학생 아들딸들을 한꺼번에 수백 명을 데려가실 때, 그 갑갑함으로 목회를 그만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과 사고가 날 때마다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교를 해야 하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강산이 변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갑갑함을 삭히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할로윈 데이'가 무엇이길래 또 우리의 청춘들 수백 명의 생명을 한꺼번에 데려가셨을까? 자꾸 생각이 나서 솔직히 며칠 동안 밥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도대체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하시는지, 이것이 전부 인간들의 죄가 관영해서일까, 심판일까, 진노일까, 우연일까, 인간들의 욕망의 실수일까'. 종잡을 수가 없다. 기도 소리가 적어서 인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답지 않아서 인가? 그러면 교회와 교인들을 벌주셔야지 그 청춘들에게 주검으로 짐을 지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재(人災)나 천재(天災)지변도 하나님의 통치임에 틀림이 없고, 인재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지 않는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천재지변과 자연재해, 우연과 필연, 인간의 죄와 욕망, 지구가 아프다. 사람들이 많이 아프다. 나라가 아프고 민족이 아프다. 정말 많이 아프다. 이런 아픔이 덜한 세상이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십자가 앞에 엎드려 본다.



이상천목사 / 강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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