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8>
박종인 선교사
2022년 09월 06일(화)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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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학원에서 한국어 강의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는 자신은 언어학원을 운영하는데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다면서, 세바스토폴에 한국인 가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물어 물어 왔다면서 "제발 학원에 오셔서 한국어 원어 발음 한 번만 들려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리하여 가서 모음 자음부터 시작하여 '가나다라...'를 한 시간 강의했더니 너무 좋아하며 시간을 연장하다가 주강사가 되었다.
합병 1년 전 여름엔 3층으로 설계된 아름다운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는 멋진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었고 주님의 계획은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거기까지였고 그 다음은 모든 것을 넘겨받은 현지 목회자의 몫이었다. 되돌아보니 그 또한 은혜요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합병 2개월 전에 새로운 주후원교회와의 약정을 위해 한국에 나왔다. 그 사이에 세바스토폴에서는 러시아 전투기가 수시로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날았고 헬리콥터도 지붕 바로 위로 낮게 비행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다섯 살, 여덟 살이던 막내와 셋째가 많이 놀랐다.
그리고 거리에서 또 기차 안에서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여러 차례 만난 것도 아이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이유 없이 코피를 쏟고 틱 증세가 나타나고 밥을 못 먹고 경기(警氣)를 했다. 전쟁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후에 한국에 와서 정신과와 심리 상담 치료를 받았다. 전문가들로부터 고양이나 개를 키우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아이들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강아지는 해가 여러 번 바뀌면서 정이 들었고 한 식구가 되어 버렸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전 한국으로 나올 때 녀석도 같이 출국하여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
한 동안 아니 지금도 그럴 때가 많은데, 바다만 보면 크림의 아름다운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세바스토폴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잊을만도 한데 선교지에서의 첫 사랑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수도 키이우에 와서 우리 부부는 기도했다. '다시 교회 개척을 할까요? 아니면 어떤 사역을 할까요?' 사역지를 옮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전엔 몰랐다. 우리 우크라이나에는 그런 선교사들이 여러 분 있다. 추방을 당하고 다시 시작하는 선교사들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라면 정말로 힘든 일일 것이다. 사역이 정해지기 전에 수도에 와서 집을 구하는 일부터 힘들었다. 1년도 안 되어 세 번이나 이사를 해야만 했었다. 한 번은 이사하여 몇 개월 안 되었는데 집주인이 자기가 사정이 생겨 그 집에 들어와야 된다고 했고 또 한 번은 고약한(?) 주인을 만나 옮길 수밖에 없었다. 또 아파트 17층에 살다가 10층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아파트 입구를 지키는 할머니들과 잘 지냈더니 그분들이 수소문하여 얻어주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묻기를, "우리 여태껏 몇 번 이사했을까요?" 손꼽아 보더니 결혼 후 스물 여덟 번째라고 말한다. 놀라기도 했지만 많이 미안했다. 어떤 때에는 출근한 후 퇴근은 다른 집으로 했던 기억도 난다.
수도에 올라와서 보니 첫째와 둘째 딸은 어느 새 대학생이 되었고 셋째는 초등학교 3학년 그리고 막내는 1학년 입학할 때가 되었다. 이 또한 주의 은혜다. 사역한다고 셋째는 등에 업고 둘만 놔두고 교회를 가곤 했었는데 주님께서 잘 키워 주셨다. 막내(넷째)얘기를 조금만 더하면 그는 크림산(産)이다. 누나를 셋 두었다. 그런데 생후 2개월 때 많이 아파 급히 귀국하여 대학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말하기를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신장이 두 개 다 망가져 제기능을 못할 뻔 했다"면서 엄마에게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결국 한쪽 신장은 전혀 일을 못하고 한쪽은 85% 작동 중이다. 당시 의사는 신장이식 신청란에 명단을 올려놓는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금까지 잘 자라게 하셨다. 2~3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올 때마다 검사를 했고 올해에도 체크를 했는데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할렐루야!"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