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크림'에서 탈출

결국 '크림'에서 탈출

[ 땅끝편지 ] 우크라이나 박종인 선교사<7>

박종인 목사
2022년 08월 30일(화) 08:15
크림의 유채꽃밭에 셋째 딸인 안나가 서 있다.
흑해는 염도가 낮고 바다 밑의 황화수소로 인해 물결 색깔이 다른 바다에 비해 검게 보인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이곳을 지배한 후 최초로 흑해라 불렀다고 한다. 필자가 사역하던 흑해의 요충지 크림반도는 로마제국, 비잔틴제국, 몽골제국이 지배하다가 15세기 중반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했다. 1783년부터 1954년까지는 러시아제국이 크림반도를 지배해오다 1954년 소련의 흐루쇼프가 내부 행정구역 조정으로 우크라이나에 편입했고 소련 붕괴 이후엔 독립한 우크라이나로 소속되었다.

크림반도의 면적은 경상도와 비슷하며 인구는 250만 명이 좀 못 된다. 자치공화국인 크림의 수도는 심페로폴이며, 세바스토폴은 특별자치시인데 그곳은 흑해함대가 주둔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를 가진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광지로 이름난 얄타에는 러시아 차르의 여름 궁전(리바디야)이 있으며 바로 거기서 얄타회담이 열렸었다.(1945년 2월 루즈벨트, 처어칠, 스탈린) 러시아는 항상 지중해 진출을 꿈꾸었고 이를 위해 흑해를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했다. 유럽, 나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흑해를 둘러싸고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2012년 어느 날 주후원교회로부터 메일이 왔다. 한 텀(6년)만 후원하고 더 이상은 교회 사정상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좀 놀라긴 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어서 총회 산하 관련 부서에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기도하며 다른 후원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예정된 달이 빨리 지나고 생활비 후원 없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곧 연결될 것을 기대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록 그랬다.

힘들었지만 은혜 가운데 지나고 있던 중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메일이 한 통 왔다. 어느 교회에서 후원하겠으니 한국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집사람과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슬라바 보구!(주님께 영광을!)"

2014년 2월 둘째 주일에 약속을 하고 혼자 귀국했다. 감사와 감격으로 약정을 맺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먼저 교회에서 후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은 그 교회 어느 연세 많은 권사님이 새벽마다 기도했다고 한다. 그 권사님의 간구 대로 주님께서는 응답해 주셨다.

그리고는 급히 귀임을 서둘렀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에서 나올 때 나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수도 키이우에서는 친러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진압과정에서 인사사고가 나면서 시위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 한편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백성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바스토폴을 점령했고 급기야는 크림반도 전체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는 합병하고 말았다.

2월 말일에 인천공항을 떠나 크림반도 심페로폴 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심페로폴 행 비행기를 타려하니 전광판에서 '딜레이'라고 올라왔고 좀 있다 보니 '취소'라고 떴다. 동행하는 여러 승객들을 따라 수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그 때 러시아 군대가 심페로폴 공항을 접수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우크라이나 내륙과 크림반도를 오가는 기차는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열렸을 때 내려가서 가족과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점령하면 더 이상 종교비자를 주지 않기에 주위에서도 외국인들은 빨리 떠나는 것이 답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정리할 것들은 정리했다. 쉽지 않았다. 살림살이 정리도 어려웠지만 성도들과의 이별은 정말 힘들었다.

마지막 세바스토폴을 벗어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아무도, 어느 택시도 우리 가족을 세바스토폴에서 심페로폴 기차역까지 태워주려 하지 않았다. 두 도시 사이에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검열하고 외국인이 타고 있으면 여권을 뺏고 해를 끼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예비해 두셨다.

2월 마지막 주일예배를 마치고 심페로폴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하는 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모두 걱정하며 출발했다. 우리 앞 차까지 자동차 밑까지도 거울로 확인하던 군인들이 우리 자동차는 열어 보지도 않고 지나가게 했다. 운전하던 친구가 그곳을 빠져나오며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계셔서 이 어려움에서 돌봐주셨다'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수도까지 가는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찾고 있을 때 마침 하르키우로 가는 표가 나왔다. 그렇게 마지막 열차를 타고 다섯 식구가 크림반도를 벗어났다. 그 때가 2014년 3월 2일이었다.



박종인 목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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