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시대 마감하고 한국 장로교 시대의 서막 열어

선교사 시대 마감하고 한국 장로교 시대의 서막 열어

[ 총회 창립 110주년 기획 ] 1. 그 역사의 현장을 가다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22년 08월 30일(화) 22:55
1912년 평양 경창문안여자성경학원에서 열렸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창립 총회 총대일동.
한국 장로교 총회 창립 110주년을 맞았다. 110년 전, 제1회 총회 창립은 한국 장로교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굴복하지 않고 온몸으로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며 이뤄낸 성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제1회 총회는 한국교회가 더 이상 일제의 압제 아래 예속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출이기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 땅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로부터 한국교회로 중심이 이동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제1회 총회가 열렸던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며 발걸음을 그곳으로 돌렸다. 제1회 총회가 열리던 당시의 상황은 말 그대로 암울함 그 자체였다. 2년 전인 1910년 경술국치로 불리는 한일합방이 이뤄졌고 그 다음 해인 1911년 조선총독부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총독 암살 모의로 날조한 '기독교인 105인 재판 사건'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일제의 핍박은 가혹했다.


■역사적인 제1회 총회 개막

1912년 9월 1일, 한국 장로교회에 역사적인 아침이 밝았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계 지도자들이 한 명 두 명 평안남도 평양 경창문안여자성경학원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든 인원은 전국 7개 노회에서 파송된 한국인 목사 52명과 선교사 44명, 장로 125명 등 총 221명에 이르렀다. 오전 10시 30분, 역사적인 조선야소교장로회 제1회 총회가 열려 가슴 벅찬 감격의 개회예배를 드렸다.

사실, 한 해 전인 1911년 9월 11일 대구 남문교회에서 열린 제5회 독노회에서 이듬해까지 총회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이 결의에 따라 1년 뒤인 이날 역사적인 제1회 총회를 조직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총회에 파송된 총대들은 경충 경상 함경 전라 황해 평안북 평안남노회 등 7개 노회였다.

총회에 앞서 개회예배는 독노회장 이눌서 선교사가 '장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마포삼열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성찬식을 거행했다. 개회예배를 마친 후, 정회를 하고 오후엔 5000명의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석창 목사(평북 선천교회)의 설교로 기도회를 가졌다.

총회 이틀째인 9월 2일 오전 9시 평양서문밖장로회신학교에서 속회된 총회는 4일까지 회무가 진행됐다. 회무 첫날, 총회에선 레이놀즈 선교사의 강론과 박예현 목사의 기도 후, 총회가 창립된 취지를 설명하고 221명의 총회 총대를 천서했다. 이어 일본교회 대표의 인사와 축시가 낭독됐다. 절차위원회의 보고로 절차를 채택한 후, 미북장로교와 미남장로교, 영국 캐나다 호주장로회 등에서 총회 창립에 대한 축하의 뜻을 전했다. 길선주 목사가 축하에 대한 답례로 해외 장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한국 장로교회가 세계교회의 일원이 됐으며 연대하는 계가가 됐다.


■언더우드,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

초대 총회장 언더우드 선교사.
이어 총회를 이끌어갈 임원선거가 시작됐다. 당시 선교사의 영향이 컸던 한국 장로교회의 상황을 반영하듯, 초대 총회장엔 한국인 목사가 아닌 언더우드 선교사가 선출됐다. 총회 역사 기록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더우드의 공로와 지도력의 결과이지만, 당시 '105인 사건'으로 인해 한국인 지도력이 대거 투옥된 상황에서 교회와 총독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총회장은 한국인 길선주 목사(평양), 서기와 부서기에 한석진 목사(서울)와 김필수 목사(군산)를 각각 선출했다. 회계엔 방위량 선교사와 부회계엔 김석창 목사(선천)를 각각 선출했다. 역사학자인 윤경로 교수는 임원선출을 두고 "지방별 7개 노회가 연합해 총회를 조직함으로 임원 선정에서도 지역 안배를 중요시했다"고 평가했다.

첫 총회인만큼, 총회에선 고퇴(사회봉)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 총회 기록에 의하면, "이 고퇴는 요한계시록의 7개 교회와 총회 산하 7개 노회를 상징하는 7가지 다른 나무조각들로 만들었고, 그 위에 세 개의 은고리를 둘렀다"고 언급했다. 고퇴에 대해 윤경로 교수는 "일곱 노회가 하나의 연합된 몸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해 일곱 가지 색깔의 나무에 삼위일체를 상징해서 세 띠를 둘렀으며 십자가 위에 서 있는 반석같은 교회를 생각해서 견고한 나무로 제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교사 파송 결의

창립 총회에서 최초로 해외선교사로 파송된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회는 제1회 총회를 통해 피선교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새롭게 태어났다. 총회에선 전도주일을 지킬 것과 함께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했다. 제1회 총회 결의에 따라 선교사 선발 과정을 거쳐 제2회 총회에서 중국 산동성 행양현과 내양현에 김영훈 박태로 사병순 등 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1913년 11월에 이들을 파송하면서 한국교회가 독자적으로 해외선교 파송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독노회를 조직할 당시엔 제주도에 이기풍 선교사를 파송했던 총회가 제1회 창립 총회를 조직하면서 해외선교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12신조와 규칙 채택

총회가 창립하면, 신조와 규칙을 제정해 신앙고백과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신조와 규칙을 채택한다. 제1회 창립 총회에선 1907년 독노회가 조직되면서 준비했던 '죠션쟝로교회신경'(12신조)과 '죠션예수교쟝로회규측'을 논의없이 채택했다. 총회 역사엔 12신조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12신조'는 1904년 인도에서 12개의 상이한 장로교회 및 개혁파 교회들을 하나로 연합해 인도 장로교회를 만드는 데 사용됐던 신조로서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표준을 세우고 목사, 강도사, 장로, 집사가 임직할 때 승인할 신조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내용은 서문을 제외한 거의 그대로 수용했는데 선교사들은 인도와 조선뿐 아니라 아시아 모든 장로회가 이 신경을 다 쓰기를 희망했고 그것을 통해 장로교회들이 에큐메니칼 연대를 갖기를 원했다"

제1회 총회에선 노회록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순서도 가졌다.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열린 역사적인 제1회 총회는 4일 오후가 되면서 회무를 마치고 폐회 순서에 들어갔다. 총회장 언더우드는 제2회 총회를 경성에서 모이기로 청원한 후, 길선주 목사의 기도로 제1회 총회는 폐막됐다.

한편 제1회 총회 폐회 이후인 저녁 7시 30분 평양 장대현교회에선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도에서 펼쳤던 선교사역을 보고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특별 순서를 갖기도 했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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