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생명이 움트는 자리

주님의 생명이 움트는 자리

[ 논설위원칼럼 ]

김경진 목사
2022년 04월 11일(월) 09:36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젊은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나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나는 투병 중이에요.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워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거죠."

올해 초에 작고하신 故 이어령 선생의 생전 인터뷰 중 일부이다. 평범하게 들리는 이야기이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다.

그렇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 어리석은 인간이 죽음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은, 아마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서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곳곳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아왔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위협 아래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웃의 죽음, 친구의 죽음,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누구도 죽음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음을 되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비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혹자는 이 시대를 전쟁이 그친 평화의 시대라고 일컫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잔이 수많은 사상자와 유가족을 낳고 있다. 매일 밤 총성을 들으며 잠들어야 하는 아이들, 마음껏 거리조차 활보할 수 없는 사람들, 총탄을 피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이들의 현실은, 죽음을 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죽음을 외면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포장으로, 때로는 현실의 삶에만 몰두함으로, 우리는 마치 죽음을 이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말 그대로 착각일 뿐, 우리의 외면 뒤로 '죽음'은 더더욱 힘을 얻어 간다. 우리가 다른 이의 죽음을 외면하면 할수록,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에 침묵하면 할수록, 죽음은 자생력을 얻을 뿐이다. 그렇게 인간은 결국 종말을 경험하지만, 죽음만은 종말하지 않는다.

이제껏 누구도 죽음을 정복한 사람은 없다. 어떤 종교도 죽음을 넘어섰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죽음의 종말을 고한 분이 계시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5,57). 누구도 죽음을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던 그때, 주님께서는 사망을 '원수'로 선포하셨다(고전15:26). 누구도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던 그때, 주님께서는 '영생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다(요일1:1~2). 그리고 그 생명은 '밖으로부터 오는' 생명이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삶 가운데 '임하는' 것임을 선언하셨다(요11:25).

생명은 '밖으로부터' 임한다. 2022년 부활주일을 기다리며, 밖으로부터 임하는 주님의 생명을 노래해 본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부활이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그 '길'을 찾아본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구멍 나 있는 몸'이었다. 부활체는 무흠한 몸이어야 할 것 같은데, 주님의 몸은 완전무결한 몸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상처의 흔적이 있는 몸, 못 자국 선명한 몸이었다. 그렇다면 주님의 몸이라 불리는 교회도, 그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모습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주님은 깨진 몸이라 하여 버리지 않으신다. 상처 나고, 흠이 있다 하여 안 된다 하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그 찢긴 몸들을 당신의 거룩한 보혈로 이으시고 새롭게 소생시켜 주신다. 그러니 주님의 거룩하신 피로 새 생명을 얻은 성도란, 바로 이 아름다운 연대에 동참하는 자가 아닐까? 우리의 손과 발이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닿을 때, 주님의 생명이 그 자리에 움틀 테니 말이다.



김경진 목사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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