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호랑이를 찾아서

내 안의 호랑이를 찾아서

[ 논설위원칼럼 ]

문정은 목사
2022년 01월 17일(월) 08:56
옛날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신에게 호랑이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찾아와 인간이 되고 싶다고 간청하였다. 하늘 신은 호랑이와 곰에게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동굴에 들어가 빛을 보지 않고 지내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곰은 성공해서 인간이 되었고, 호랑이는 도중에 도망쳐 인간이 되지 못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오랜 신화 이야기이다.

"곰이 한국 여성, 또는 고생과 말 없는 인내가 핵심인 어떤 여성다움을 상징한다면, 호랑이는? 고생을 거부한 대가로 쫓겨난 여자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When You Trap a Tiger)'의 저자 태 켈러(Tae Keller)는 이렇게 질문한다.

호랑이는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호환 마마'라는 표현에서처럼, 모두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는 아기들을 달랠 때, "그만 안 울래? 아님 호랑이가 잡아간다!"라는 말로 상황을 반전시킬 만큼의 효과가 있는.

그러나 태 켈러의 동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의 주인공 릴리 앞에 나타난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호환마마 맹수가 아닌 주인공이 사랑하는 할머니의 다른 모습으로 투영되고, 모성 가득 찬 암컷 호랑이로, 영민함과 친절함을 가지면서, 주인공 릴리와 할머니를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호랑이와의 만남 속에서 주인공 릴리는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아이)에서 강인함과 맹렬한 용기를 지닌 '초능력 호랑이 소녀'로 성장한다. 태 켈러의 호랑이 이야기는 전래동화와 디즈니 명작동화에서 그려진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편협화 된 우리의 성 인지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우리 교회로 시선을 돌려본다. 남성 중심의 교회 구조는 여성들을 주변화하고, 교회 내 여성들의 소외, 차별,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별히 성직에서 여성 목회자들은 구조적, 문화적인 심각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신학대학원 졸업 후, 전임사역을 위해 몇 십 장의 이력서를 쓰고, 교회 면접을 보았지만, 어느 교회에서도 전임사역을 구하지 못했다는 여성 후배의 하소연은 내게 깊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

총회의 양성평등위원회는 총회 동성애 대책 및 양성평등위원회로 통합되었고, 여성 총대 할당제도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일 뿐이다. '양성 평등'의 이슈가 어찌하여 문제적 사안에 대한 대처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의문이고, 교회 내 여성의 지도력 향상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동등한 역할 분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찌하여 누군가가 배려해야 하는 '약자'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불만스럽다.

한국교회의 성 인지 감수성은 '고난과 시련을 인내함으로' 견뎌 곰에서 인간이 된 '웅녀'의 이야기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건가? 왜 부당한 대우를 참으라고 하는가? 공정하지 못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면 여성스럽지 못한 건가? 누군가에게는 '진취적이고, 심지가 굳고, 비전이 크다'라는 평가가 여성에게는 '좀 엉뚱하면서, 고집스럽고, 욕심이 있어'라는 표현으로 바뀐다. 기관목사로 일하면서 아주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이, 나의 동료들이, 후배들이 조용한 곰으로 남아 있기 보다는, 어두운 동굴을 뛰쳐 나가는 호랑이가 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자신만의 호랑이 이야기를 창조해 가기를 희망한다.

지난 해 말, 영화 '세 자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문소리의 수상 소감의 부분 인용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우리 딸들이 폭력의 시대,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 당당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영화이고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지길. 멋진 언니들이 있어서 우리 딸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 멋진 호랑이 언니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문정은 목사 /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아시아기독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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