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오징어 게임을 멈추어야 한다

기독교인, 오징어 게임을 멈추어야 한다

[ 생생논평 ] 당신이 오징어 게임을 멈출 한 사람

이상갑 목사
2021년 10월 12일(화) 13:43
요즘 오징어 게임이 인기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456명의 참가자들은 상금 456억원을 걸고 옛날 어린 시절 놀이를 진행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구슬따기, 줄달리기, 징금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의 여러 게임을 진행합니다. 탈락하면 그 순간 목숨을 잃습니다. 오징어 게임에는 돈 때문에 죽고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잘 드러납니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은 궁지에 몰린 사람들로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징어 게임에 나타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너무 부정적입니다. 첫 번째 등장인물은 줄다리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자 감사기도를 드리며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자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합니다.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거짓 신앙입니다. 이런 분을 성도로 볼 수는 없습니다. 진짜 성도라면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긍휼의 시선으로 봅니다.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결코 나의 감사제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어찌하든지 공존과 공생을 추구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타인을 희생 시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기독교인은 아버지를 죽이고 출소한 어린 나이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연을 고통스럽게 고백합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자신을 괴롭힌 아픈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드라마지만 고통스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칠해지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런 부류라면 그냥 나쁜 인간입니다. 위선자일 뿐입니다. 그는 직업란 항목에 목사로 기입을 할 것이지만 진짜 목사로 보기도 힘든 바리새인일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성 문제, 재정 문제,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유형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목사 이전에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거짓과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위선과 거짓을 벗기는 진리위에서 진실한 삶을 추구합니다. 결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둠의 일을 반복해서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등장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 주인공의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비오는 길거리에 버려집니다. 그때 다른 행인들은 주인공을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열정적으로 외치던 한 전도자가 다가와 주인공의 안대를 벗겨줍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길바닥에서 눈을 뜨자, 남자가 그에게 내뱉는 말은 "괜찮아요?"가 아니라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합니다. 여기엔 세상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떻게 해석할까요?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외침이 아닐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당하고 고난당하는 이들을 조건 없이 품고 조건 없이 섬겨주는 것일 것입니다. 말로는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지만 삶은 공감할 수 없다면 오히려 전도의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라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그를 붙잡아 일으켜 주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삶으로 말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삶이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지는 존재입니다. 말이 아닌 삶이 전도지입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인의 모습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져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뼈아픈 자성과 회복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드라마속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기독교인과는 삶의 결이 달라야 합니다. 교회도 목사도 성도의 존재 방식도 오징어 게임과 달라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두고 도박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주마나 싸움탉처럼 전락해서 죽고 죽이는데 그것을 돈을 걸고 즐기고 있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단순하지만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돈 앞에 부모형제, 친구, 동료도 없어집니다. 형이 동생을 죽입니다. 동료가 배신을 합니다. 약자만 계속 죽습니다. 루저들끼리 싸우고 계속 죽어갑니다. 기독교인은 그런 불의와 불법과 부정한 일상인 세상 속에서 오징어 게임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을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드라마 속의 오징어 게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양한 모습의 오징어 게임을 합니다. 오늘의 경제 양극화 현상이 오징어 게임의 결과입니다.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진영의 이익만 추구하는 언론과 정치의 진영논리가 오징어 게임의 결과입니다. 희생하기 싫어하는 남북의 통일 문제도 오징어 게임의 연장선입니다. 이제 기독교인들부터 패자부활절이 없는 오징어 게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오징어 게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죽고 죽이는 오징어 게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오징어 게임으로 향하는 세상에서 공존, 공생, 공감을 추구하는 대안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현실의 여러 오징어 게임들이 기독교인들 때문에 멈추어져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오징어 게임에 스스로 가도록 유혹받고 오징어 게임에서 패배하여 죽어가는 것을 멈추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가인의 소리가 아니라 오징어 게임을 보고 안타까워서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고백하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 각종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인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의료, 교육, 군사,..각 영역의 오징어 게임이 멈추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할 바로 그 사람입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