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은 따로 있다

종점은 따로 있다

[ 논설위원칼럼 ]

김운성 목사
2021년 09월 27일(월) 11:58
조용기 목사님께서 별세하셨다. 필자도 잠시 문상을 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어려운 병으로 고생할 때, 당시 서대문에 있던 조 목사님의 교회에서 예배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일이 있기도 하다. 조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쓰신 분이 틀림없다. 대단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 분도 작은 땅에 누우셨다.

여의도를 지날 때마다 웅장한 교회당을 바라보곤 했다. 조 목사님께서는 거기서 엄청난 일을 하셨다. 거기서 설교하셨고,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셨고, 거기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셨고, 때로는 거기서 영광도 누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조문하면서 필자는 살아 계신 조 목사님이 아니라, 영정 속의 조 목사님을 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의도 예배당이 대단하지만, 그곳이 조 목사님의 종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종점은 따로 있다. 그 종점은 하나님 앞이다. 우리는 언젠가 다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거기서 우리 인생에 대해, 믿음과 삶에 대해 하나님의 냉정하고 정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더 커졌다. 그 종점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다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간교한 이중성과 거짓을 아실 것이기 때문이다. 경건하게 예배를 인도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을 때가 많았음을 아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구보다 확신한다는 듯이 두 팔을 들고 흔들며 강단을 두드리며 설교했지만, 교인보다 못한 확신을 위장한 것에 불과했음을 다 아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인 듯이 밝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지만, 마음에서는 과거에 그가 했던 일에 대한 분노가 아직 삭지 않은 채 미워하고 있었음을 다 아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 일일이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아실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근에 조 목사님 외에도 존경하고 사랑하던 은퇴 장로님 몇 분도 별세하셨다. 갑자기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 종점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실지 두렵다.

지금 많은 이들은 현재 목회하는 교회, 지금 활동하는 노회와 총회 무대가 종점인 줄 아는 것 같다. 아니다. 거긴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요, 종점은 따로 있다. 하나님 앞이다. 그리고 그 종점에서는 우리가 지금 왕 노릇하는 가정, 교회, 노회, 총회 등에서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준엄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번 회기에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말할 때, 어떤 자리를 두고 뜻을 품을 때, 여기가 종점이 아님을 깊이 생각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종점에 도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면 좀 더 절제하면서 말씀에 따라 정직하고 바르게 하지 않을까? 그래서 주님의 일로 포장한 정치 대신에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세가 한 해 동안 11만여 명이 감소한 상황에서 교단의 지도자들 모두가 인생의 종점을 생각할 때라 여겨진다. 지금 있는 곳, 하는 일, 앉고 싶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겠다. 금방 지날 일이 아닌, 영원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다. 우리 모두 덜 부끄럽고, 덜 두려워하면서 종점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를 지나야 하겠다. 종점에서 덜 부끄럽기 위해서 말이다.



김운성목사 /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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