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이 애틋한 이유

연경이 애틋한 이유

[ 논설위원칼럼 ]

탁지일 교수
2021년 08월 16일(월) 08:02
긴장, 흥분, 실망, 분노 등의 감정 표출이 일반적인 스포츠 관전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올림픽 배구코트에 선 김연경 선수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었던 '애틋함'이란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힘에 겨운 승부인 것을 알면서도 담담하게 코트로 나서는 모습, 패배할 가능성이 농후한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실점으로 당황해 하는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힘차게 격려하는 모습이 애틋했고, 국가대표 캡틴으로서의 당당함, 자신감, 책임감 있는 모습이 오히려 애틋함을 자아냈다.

이따금씩 방송을 통해 접하던 그녀의 쾌활하고 거침없는 유머감각을 익히 봐왔기 때문에, 올림픽 배구코트에서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비장하게 서있는 김연경 선수가 더 애틋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대담하고 거침없는 캡틴의 품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잔향으로 남았다. 승패와 무관하게 코로나와 더위로 지친 마음을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채워준 힐링의 순간이었고, 더욱이 이단 교주들의 비상식적이고 부정적인 반면교사의 리더십을 주로 연구해 온 필자에게는 긍정적인 선한 리더십의 표상을 맛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캡틴의 역할이 무엇인지 김연경 선수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비록 '좁은' 배구코트 안의 리더십이었지만, 훨씬 '넓은' 세상의 지도자들도 갖기 힘든 역량이었다. 그녀의 리더십이 돋보였던 이유는, 오늘날 지도자들의 추락하는 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분열과 파벌을 거리낌 없이 조장하고, 네거티브한 정치적 수사와 술수로 자화자찬하는 후보자들의 얄팍한 언행이 우리를 식상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손실과 신체적 무리도 마다하지 않고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대표 캡틴으로서의 늠름한 면모를 보여준 김연경 선수의 모습이 더욱 애틋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교회적으로는, 힘든 코로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신앙적 결단으로 합리화하고, 성경적 이웃사랑의 대의를 외면한 채, 왜곡된 선민의식을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이들로 인해 교회 전체가 주변사회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열 걸음을 내달릴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를 존중하며 동료들과 '함께 한 걸음을 내 딛으려고' 애쓰는 김연경 선수의 배려하는 모습이 애틋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장기화되는 코로나 역병과 점점 심각해지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참을성 없는 인간 본성이 하루에도 수차례 스멀스멀 올라오는 상황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묵묵히 실천하는 김연경 선수의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넉넉한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설령 김연경 선수의 이런 행동이, 올림픽 메달을 향한 그녀의 집착이나 개인적인 명예욕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괜찮다. 선한 마음과 방법으로 주변을 배려하고, 많은 이들의 진심어린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욕심이라면, 그런 욕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 김연경 선수가 중국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앞으로도 이러한 '선한 욕심'을 부디 잃지 말고 맘껏 부리기를 희망한다.

다가오는 제106회 교단 총회에서 임원 및 주요 기관 대표들의 선출과 인준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잠시 머물다 교체되는 한시적 캡틴들이 아니라, 위기의 한국교회와 사회가 애틋한 마음으로 주목하고, 공감하며, 응원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캡틴들'이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엡4:4)을 받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탁지일 교수 / 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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