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신학의 갈 길

복음적 신학의 갈 길

[ 논설위원칼럼 ]

안주훈 총장
2021년 07월 19일(월) 09:15
우리나라가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개도국 지위를 벗어나 선진국으로 들어간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를 얼마 전 접하게 되었다. 전쟁의 화마 속에 수많은 가족과 생명을 잃어버린 채 실낱 같은 희망 속에 나라를 재건해 나가던 시절, 못살기로 말하자면 전 세계 꼴찌 등수 안에 드는 낙오자 그룹에 속했었다. 그런 나라의 국민이 자존심 하나로 국제기구에 발을 들여놨을 때 만해도, 반세기만에 최빈국을 탈피해 세계의 선도그룹에 들어가리라고 꿈꿨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혹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몽상가 소리를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듯 역사는 어쨌든 꿈꾸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현장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은 상식을 뒤엎고 세계사의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드는, 존경받는 나라를 일구어 올 수 있었다.

지금 와서 회상해 보면 기적을 상식으로 만드는 역사의 발걸음에 이 나라의 교회가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작고한 하버드의 정치학자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세계적 저술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한국의 근대 발전에서 교회가 감당했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교회는 영적 안식처의 역할로 자리매김 해 왔으며, 좌절의 극복과 성장의 동력이 필요했던 시기에 정신적 동력을 제공하는 심장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주체로 교회는 항상 중심의 위치를 지켜왔으며, 그래서 교회는 항상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나가는 도구로 사용받을 수 있었다. 근대 역사 속에서 한국의 교회가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이나 산업과 같은 신문물의 도입 주체였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민족의 심장을 움직이는 교회였기 때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말씀에 따라, 그리고 개혁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성경의 말씀의 기반 위에 기도에 힘쓰는 교회로서 자리매김 했기 때문에 교회는 격변의 역사 속에 길을 잃지 않고 방향의 제시자로, 역사의 나침반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사회의 가치는 다원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한국교회가 붙들고 나아가야 하는 이러한 기반은 바뀌질 않았다. 오늘의 세상을 가리켜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이 존중되며, 밀레니djf 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문명적 도전 속에 인간의 미래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시대상을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아도 혼돈스럽고 위기감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라는 세계적 위기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붕괴되었다고 말하며,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비대면 문화의 홍수 속에 교회마다 예배의 자리를 지켜내기도 버겁다고들 한다.

기독교 신학의 위치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도, 더 이상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지 말고,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대의 향방을 읽어내며 교회의 행로를 모색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나름대로 일리 있는 진단들이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의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기 전 교회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지반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혼돈의 분위기가 지배할수록 우리는 보다 분명하게 어디에 목표를 둘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심리학자 피터슨이 상기시켜 주듯 잘못된 목표를 향해 쏜 화살을 가리켜 하마르티아, 즉 죄라고 한다. 혼돈의 느낌이 강할수록 우리의 눈은 흔들릴 수 있고, 잘못된 목표를 겨냥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복음이 말씀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우리의 지반은 말씀과 기도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불확실한 지반은 한순간에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신학교들의 앞날에 대한 염려가 지배하는 때이지만, 미래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산출의 결과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바라보되 예단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지혜에 해답을 구하기 전에 이 시대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고통스러웠던 과거 역사 속 성장의 시절, 이 나라의 교회가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정신적 동력을 제공해 주는 밑거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회가 가지고 있던 탁월한 능력 때문이 아니다. 낙담과 좌절이 팽배한 세상을 향해 조국이여 걱정말라, 내가 기도하고 있노라고 하는 본질의 소리를 선포할 수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자랑스런 선진조국, 그러나 우려를 감출 수 없는 세속주의의 물결과 기록적인 저출산 속에 수년 후를 걱정해야 하는 혼란한 세상을 향해, 그리고 때로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을 잃어버리고 혼돈에 빠지곤 하는 교회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하는 말은 개혁자들이 선포했던 이 말이다. 다시 복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





안주훈 총장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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