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다윗 그리고 우리의 전지적 참견 시점

청년 다윗 그리고 우리의 전지적 참견 시점

[ 논설위원칼럼 ]

문정은 목사
2021년 05월 26일(수) 16:50
모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지난 3년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방영되고 있는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인기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리얼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이다. 카메라는 출연자들의 화려한 연예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무대 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더 집중한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별다르지 않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되고, 그들의 인기와 명예 뒤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좌절, 눈물, 땀, 실패, 고생담들에 동정을 보내기도 한다.

이스라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블레셋 군인들과 대적하여 진을 치고 있는 엘라 골짜기로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온 다윗은, 엄청난 거구로 갑옷과 창으로 중무장한 블레셋 군인 골리앗을 보게 된다(삼상17장). 다윗은 골리앗과의 1대1 단판 싸움에 나서서,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키고 그를 쓰러뜨린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다윗은 별 볼 일 없는 양치기 목동에서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리고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이제 우리의 '전지적 참견 시점'을 신실하고 용맹스러운 영웅 다윗 왕에서 어린 청년 다윗에게로 바꾸어 보자. 골리앗이 자신을 상대하여 싸울 자를 내보내라 위협할 때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군은 놀라며 크게 두려워했다고 하는데, 다윗은 정말 골리앗이 무섭지 않았을까?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라고 큰소리쳤지만, 내심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사울이 입혀 준 갑옷과 투구를 벗은 건, 그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골짜기 끝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휘두른 한방이 다윗을 살린 건 아닐까? 물맷돌로 거구의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영웅담에 심취해,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한 청년의 외로움을 모두가 외면한 건 아닐까? 그리고 다윗의 등장 이전, 죽음의 엘라 골짜기로 내몰려 희생한 무명의 청년 군인들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없지 않은가? 만약 골리앗과의 싸움이 없었다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양 치는 목동으로, 탁월한 시인으로, 음악가로 그의 인생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는, 오늘날 절대적 강자와 약자가 맞붙어 절대적 약자가 승리할 때 비유의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절대적 약자가 다윗처럼 항상 역전의 승리를 얻을까? 그때는 이길 수 있었겠지만,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많은 경우 절대 강자가 승리한다는 걸 우리 청년들은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 다윗이 함부로 골리앗에게 덤비면 된통 혼이 난다는 걸 우리 청년들은 뼈저리게 학습하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는 청년들에게 화려한 스펙을 쌓고, 능력을 키우라고 하지만, 여기에서 이미 많은 청년들이 배제되고, 차별을 경험하며 절대적 약자의 한계에 상처받고 절망한다. '각자도생'의 경쟁사회, 현대판 '엘라의 골짜기'에서 우리의 청년들은 길을 잃었다. 청년실업과 빈곤, 비정규직 차별, 학벌주의, 연공서열, 주거 불평등의 이슈들은 청년들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외면과 무시 속에서 우리 청년들은 홀로 골리앗에 맞서고 있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현재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청년들 중 상당수가 앞으로 계속 신앙생활을 유지하겠지만 교회는 출석하지 않겠다고 한다. (목회데이터연구소 2021년 1월 조사보고) 청년들은 교회에 대한 주요 불만 사항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적 태도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회의 고리타분함을 꼽았다. '현재 한국 교회는 소수의 집단이 독점한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로 교회와 교단은 부패했고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기독 청년들의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 우리 교회 안에 청년의 자리가 없다. 청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청년들을 향한 격려와 위로, 치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회복, 청년 지도력 개발을 위한 청년 정책이 시급히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신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용맹하게 도전하는 기독 청년 정신이 살아나도록 교회와 교단이 각성하고 나서야 한다. 청년은 교회의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문정은 목사/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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