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다' 로 본 역사적 사건

영화 '이다' 로 본 역사적 사건

[ 논설위원칼럼 ]

박재윤 장로
2021년 03월 24일(수) 16:58
지난 설 연휴 첫날 우연히 찾아내고 극장에서 관람한, 폴란드 영화 '이다'(2013년 제작)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1962년 경 폴란드의 시골이 무대이고, 요즘 보기 어려운 가로:세로, 4:3 비율의 흑백 화면이며,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하는 아름다운 영상 작품이었다. 2014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 수상을 비롯, 기타 여러 국제적 명성의 상을 거머쥐었다.

간난 아기 때인 2차 대전 중 고아로 시골 수녀원에 맡겨지고 성장하여 서약식을 앞두고 있던 수련생 '안나'는 어느 날 원장 수녀의 지시에 따라 먼 동네에 사는 초면의 이모(유일한 혈육) '완다'를 만나러 간다. 거기서, 안나는 자신이 뜻밖에도 '이다'라는 본명의 유대인이며, 생부모가 전쟁기간 중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모 완다는 전쟁 중 레지스탕스 활동을 위해 집을 떠나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누이(즉 이다의 엄마)에게 맡겼는데, 이 아이가 이다의 부모와 함께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말도 하였다. 완다는 종전 후 항독 무장투쟁의 공로로 폴란드 공산당 정부의 검사가 되었고 수많은 반동들을 기소하여 사형장으로 보낸 후, 타락적 무드가 진한 은퇴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둘은 각기 아들과 부모의 묻힌 곳을 알아내고자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혐의가 있는 노인을 찾았으나 사경이 되어 대화가 어려웠고, 그의 아들인 중년의 '펠릭스'를 만나 갖은 교섭과 사정을 한 끝에 매장 장소를 안내받게 된다. 펠릭스가 삽으로 흙을 파고 유골을 발굴해서, 아이의 작은 유골은 엄마 완다에게, 부부의 유골은 딸 이다에게 각각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 셋을 숲으로 데려와 살해했다고 시인하면서, "완다의 누이의 친딸인 이다는 매우 어렸기에 기독교 가정의 아기로 꾸며서 지금의 수녀원에 맡기게 되었다"고 했고, 반면 "완다의 아들인 아이는 피부가 검고 할례를 받아서(was dark and circumcised) 그렇게 꾸밀 수 없었기에 완다의 언니 부부와 함께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황폐한 유대인 묘지로 이동하여 땅을 파서 유골을 매장하였고, 바로 헤어져 각기 종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듯 했으나, 실제는 다르게 진행된다. 완다는 아들과 누이의 유해를 한꺼번에 확인한 데다 조카 이다와도 헤어져야 하는 슬픔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아파트 창문으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수녀원 안의 이다는 생래의 가톨릭 신앙과 새로운 유대인 정체성과의 갈등 때문에 서약식을 미룬 채 고민하다가, 완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안정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드높이는 스탈린주의적 조사를 듣는다. 그리고는 이모의 방으로 가서 수녀 제복을 벗고 이모의 야회복과 하이힐로 치장한 후, 외출하여 이모 생전에 함께 우연히 만난 일이 있던 남자 악사 '리스'의 일터에 가서 춤 스텝을 배우듯 하다가 함께 이모의 방으로 돌아와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 리스가 결혼하여 애들도 갖고 싶다고 말했으나, 이다는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는 새벽에 몰래 일어나서 수녀 제복을 차려입은 후 수녀원으로 떠난다.

이상 스토리의 배후에 독일의 폴란드 점령, 홀로코스트, 스탈린주의의 통치 등 역사적 사건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고 그냥 분위기 안에 잘 스며들어 있다. 종전으로부터 어언 80년이 가까워 오지만, 나치의 만행과 그로 인한 피해가 소재로 된 이야기는 지금도 샘솟는 듯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끝으로, 최근 모 일간지에서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의 꽤 긴 서평(Norman Davis, 유럽사)을 읽다가, 거의 끝 문단에 눈길이 가면서 이모 완다의 캐릭터가 떠올랐음을 적고 싶다. "(저자는) 나치 독일의 예비경찰대가 폴란드의 유대인 8만3000명을 살해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폴란드 공산당 보안국에서 활동한 유대인들이 어쩌면 더 악랄하게 고문과 살상을 한 사실을 폭로한다."

박재윤 장로/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 상임고문,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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