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善意)의 역설

선의(善意)의 역설

[ 논설위원칼럼 ]

양혁승 교수
2021년 03월 04일(목) 14:15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1~3)

우리는 종종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서 접하는 역설 중 하나는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어느 순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과론의 입장에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충실하게 실천하려 하기보다는 율법을 앞세워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율법을 소중하게 지켜내려는 그들의 선의(善意)와 충심(忠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선의가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역설적 현상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 내에서도 당초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다는 선의에 의해 만들어진 교리들과 교회생활의 지침들이 순기능을 넘어 어느 순간부터 성도들의 삶을 옥죄는 '장로들의 유전'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교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들이 교회 내에서 선의를 가지고 열심을 내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왜 이러한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한 가지 원인은 무엇인가를 지켜내려는 의도에서 행위의 표준을 세우고 그것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철저하게 적용하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바리새인의 원래 뜻이 '분리된 자들'이라는 것이 말해주듯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함으로써 이민족과 분리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 듯이 그것들이 과도해 지면 역기능이 발생한다. 우리는 자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행위의 표준을 정하고, 관련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지키도록 독려하는데, 그 과정에서 행위 기준의 명확성과 적용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유무형의 신상필벌을 통해 규범의 준수를 강요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게 된다. 이것이 선의에서 출발한 표준과 규범들이 '하나님의 계명'에서 벗어나 '장로들의 유전'으로 변하게 되고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자리에 서는 현상이 발생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기보다는 완성하러 오셨지만(마 5:17,18), 공생애 기간 동안 율법의 교조적 적용을 철저히 배격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당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적용해온 행위규범을 배격하시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함을 말씀하셨고, 바리새인들이 죄인 중의 죄인으로 간주하던 그룹의 사람들(세리, 간음하다 잡힌 여인, 사마리아 여인 등)을 포용하시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셨다.

한국교회 리더들이 복음과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선의가 교회 내 성도들을 옥죄는 '장로들의 유전'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또한 교회와 사회 사이에 벽을 쌓는 결과를 야기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양혁승 교수/연세대학교,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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