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 희망가를 부릅시다"

"다시 일어나 희망가를 부릅시다"

[ 논설위원칼럼 ] 새해 아침에 보내는 편지

김운용 총장대행
2021년 01월 01일(금) 09:14
우리는 유난히 어려웠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한해를 다시 선물 받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을 정도로 코로나로 인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전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지난 부활절과 성탄절에 맘껏 모여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지 못했고, 말씀과 기도로 드리던 송구영신예배 마저 묶이고 말았다.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되었다니 이 어려움의 시간이 속히 지나길 바라지만 당분간은 고통의 터널을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뉴노멀 시대, 주님의 교회와 사역을 어떻게 세울지, 깊은 시름이 몰려오는 때이기에 우리 기도는 더 간절해진다.

혼탁한 인간 세상에서 별과 사랑을 노래했던 이성선 시인의 새해 간구가 입술에 맴도는 이유는 어디에선가 희망을 길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우주의 주인이며 신비이신 분의 가슴에서 물을 길어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깊은 터널에 갇히고 말 것이다.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시인의 간구는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별이 되게 해달라는 노래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 학습이다. 절망할 일들로 덮여 있고, 한참을 돌아서 걷고 있지만 아직 길은 멀리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라고 물으며 희망을 학습해야 한다고 외치는 김강태 시인이 고마운 이유이다.

캄캄한 민족의 밤을 보내면서 믿음의 선배들은 희망가를 만들어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함께 불렀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1910년,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임학천이 미국 찬송가 곡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식민지 시대의 암울하던 때에 교회 안과 밖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노래 중의 하나이다. 어려움 가운데서 맞은 새해, 우리도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 사실 구속의 복음은 우리만큼이나 캄캄한 시대를 지나던 사람들에게 처음 들려졌다. 바벨론 포로기에 들려진 구속의 복음도 그랬고, 성탄의 복음도 마찬가지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그 어두움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이 성탄 복음의 핵심이며, 바로 거기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기에 일어서 노래할 수 있었다. 어둠 가득한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은 그 영광을 보며 희망가를 들려주는 일이다.

문득 남아공의 테너 가수, 시피보 응체베(Siphiwo Ntshebe)의 'Hope'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평생 인종차별에 항거하였던 넬슨 만델라가 작사한 곡이다. 맑고 힘찬 목소리가 파바로티를 닮았다고 해서 '검은 파바로티'라는 별명을 가진 응체베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 축가로 그 노래를 부르기도 되어 있었으나, 개막식 3주 전에 급성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나서 그 자리에서 그 노래는 부르지 못했다. 같은 제목으로 발매된 음반에서 그는 전 세계인에게 그 희망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친다. "당신이 꿈을 꿀 때 희망은 언제나 거기에 있어요."(There is always hope when you have a dream). 거기엔 평생 인종차별에 항거하였던 넬슨 만델라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만델라는 그렇게 외친다. "We can create…hope."(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어요... 희망을).

새해 원단, 일본사람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복수초(福壽草)를 선물한다. 일제 강점기, 식물도감에 그대로 가져다 붙여서 얼핏 살벌함마저 느껴지지만 우리말 이름은 정말 예쁘다. 얼음 사이를 뚫고 나와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얼음새꽃. 곽효환 시인은 아직 잔설 가득하고 삭풍이 불어오는 겨울 골짜기에서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저 생명을 밀어 올리는 이 꽃을 보며 생명의 경이를 노래한다. 겨울 샛강에서도, 골짜기 바위틈 절벽에서도 홀로 환하게 피어나 빛나는 들꽃을 보며 그렇게 노래한다.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아니 너다."

김운용 총장대행(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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