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 논설위원칼럼 ]

이상천 목사
2020년 12월 14일(월) 08:44
2020년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 남겨놓았다. 아쉬움에 11월 달력을 넘기기 전에 그동안 찢어내지 않고 남겨둔 지난 열한 장의 달력을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다시 넘겨본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과 1월 첫 날 첫 시간의 송구영신 예배부터 교회 달력에 인쇄된 1년 동안의 여러 목회계획을 한 장씩 한 장씩 다시 넘기면서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매 월, 매 주일 비어있는 달과 주일이 없도록 목회계획을 정말 다양하게, 꼼꼼하게 여러 가지를 많이도 세웠다. 왜냐하면 우리교회가 6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역도 건너뛰지 않고, 생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서 잘 감당하리라 세운 목회 사역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진행한 것은 1월과 2월의 제직, 여전도회, 헌신예배와 구역장 훈련학교 뿐이다. 그리고 2월 어느 날부터 COVID19로 세상이 멈춰버렸다. 내 삶도 멈췄고, 목회도 멈췄고, 교회도 멈췄고, 세상도 멈췄다. 그리고 온갖 두려움이 가득했다.

지난 10월부터 또 다시 2021년 정책당회를 모이고, 변함없이 여러 가지 많은 목회 계획을 부푼 기대를 안고 또 세웠다. 그런데 왠지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무언가가 목회계획을 세우고 싶은 의욕을 자꾸 붙잡아 내린다. "이 목사 목회계획 세우면 뭐 해? 내년에는 목회계획대로 잘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새워봐야 위에 계신 분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올해처럼 다 소용없어, 무용지물이야." 하는 수 없이 그 소리에 귀 기울여서 올해에 세워놓고 진행하지 못한 목회계획 99%를 그대로 2021년도에 또 도전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당회에 통과시켰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특별하게 허락해 주셔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진행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참 허탈하다. COVID19 때문도 아니다. 교인들이 예배드리러 나오지 않아서도 아니다. 헌금이 예산한 대로 들어오지 않아서도 아니다. 허탈한 이유는 수십 년 동안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면서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그것도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서 '할렐루야! 아멘! 저는 믿습니다'라고 정말 용기가 충만해서, 담대하게, 확신하며 예배당 스피커가 떨릴 정도로 용감하게 고백하면서 외쳤지만, 정작 COVID19 상황에선 맥도(?) 못 추고 이렇게 주저앉아서 지난 1년을 한숨만 쉬고 있다.

2020년 COVID19로 지구촌에 고통받는 분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새삼 확인하고 또 확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 우리 교인들 괜히 '믿음 없다'고 나무라지 말고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숨 쉬고 살아야겠다. 괜히 잘난 체 하면서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 지레짐작도, 넘겨짚기도, 아는 척도, 모른 척도 하지 말고 겸손해지자.

지금껏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 아무래도 교회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며 목회했던 것 같다. 이제는 조신하게 나를 돌아보려고 한다. 2020년 이미 지나 버린 열 한 장의 교회 달력을 다시 넘기면서 아쉬움 가득히 목회력을 뒤돌아보고 있다.

인생이 이렇다. 삶이 이렇다. 믿음도 그렇고, 목회도 이렇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잘난 체 하고 숨이 턱에 차도록 앞장서서 달려왔으니….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가려니 세월이 쌓이면 쌓일수록 실수도 잦고, 허물만 자꾸 쌓인다.

2020년은 처음이었다. COVID19도 처음이다. 2021년도 소망 가득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처음이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고, 허물만 남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주님 앞에 서야 할 날이 점점 가까워져 오니깐.

이상천 목사/강릉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