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블랙박스

내 인생의 블랙박스

[ 4인4색칼럼 ]

이대성 수필가
2017년 05월 12일(금) 11:51

이대성 수필가
벨로체피아노 대표, 진천중앙교회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해 과거를 되돌리며 지난 일을 샅샅이 살펴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내가 미처 몰랐던 것, 또는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며 기억에서 지웠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찍혀 들춰지면 그때의 기분이 어떨까. 그런데 후회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면….

블랙박스는 비행기의 주행기록 장치였는데 최근에 선박이나 자동차의 영상기록 장치로 발전되며 대중화됐다. 어떤 사실의 전후 상황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거나 목격자를 찾기 어려울 때 블랙박스가 아주 요긴하게 쓰이며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준다.

얼마 전 운전 중에 사고가 났다. 좌측에 샛길이 있는 삼거리로 진입하는데 신호는 이미 녹색등이라 안심하고 그대로 직진을 했다. 이때 2차로를 달리던 필자의 차를 좌측 샛길에서 튀어나온 승용차가 들이받으면서 결국 삼중 추돌 사고가 나고 말았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올바른 신호에 정상적으로 운행했기에 잘못이 없다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의 자동차 블랙박스는 그 시간의 사고 장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었기에 곤란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경찰이나 보험사는 상대방 과실을 100%, 필자의 과실을 0%로 정해주었다.

사회규범으로 정한 법과 질서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과한 욕심으로 인해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하물며 종교적 규범을 지키는 것은 사회적 규범보다 더 어렵다. 모든 것이 양심의 문제이지만 그것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양심과 자율을 존중해 그렇게 창조하셨나 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정해진 사회 법규와 종교적 규범을 잘 지켰던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법규를 위반하고 과속하며 그것을 스스로 합리화했던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양심의 블랙박스도 존재하지만, 창조주가 살피시며 기록한 블랙박스도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이 블랙박스를 되돌려 본다면 어떨까? 그것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든 오로지 하나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든 무수히 많은 과거 기록이 존재한다면, 현재 나의 삶을 어떻게 기록하며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진지한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다. 매일 숨쉬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기를 원할 것이다. 몸이 더러우면 목욕으로 씻어내고 방이 더러우면 창을 열고 청소를 한다. 하지만 마음이 더러워지고 영혼이 더러워지고 있는 것을 잘 모르며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종착역에서 "나의 과실은 0%"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당당히 열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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