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의 생존, 초심(初心)

이민교회의 생존, 초심(初心)

[ 땅끝에서온편지 ] 디아스포라 리포트-미국 시카고 기쁨의 교회 -완-

김주용 목사
2017년 04월 14일(금) 18:43

이민교회 목회자들은 이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몇 번의 위기를 경험한다. 필자도 3번 위기를 경험했다. 한 번은 사역하던 교회에서 해고를 당한 것이다. 교회에서 해고라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해고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경험을 했었다. 이민 교회의 한 선배목사는 담임목사가 부재인 교회에서 1년 동안 충성봉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겼는데 새로운 담임목사가 왔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고 통지를 교회 사무실 책상에 있는 작은 포스트잇(붙임 종이)에 '목사님, 다음 주부터 교회 안 나오셔도 됩니다. 우리 교회는 전별금은 없습니다'라는 메모를 통해 받았다고 한다. 그날 저녁에 그 목사는 교회와 사람들을 향한 인간적인 분을 참아내고 가라앉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필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라고 기본의 인간적인 예의는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는 이민교회의 냉정함과 야박함 때문에, 한 동안 필자도 성직자의 삶에 대한 자괴감에 깊이 빠졌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표현이 유행어처럼 사용된다. 그런데 그 농담 같은 표현이 디아스포라의 신앙공동체라는 이민교회에서는 자연스럽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고용한 사람들이고, 목회자는 몇 푼의 연봉으로 고용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민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하다가, 교회로부터 고용파기를 당한 필자는 성직에 대한 깊은 괴로움을 느끼며 인생의 위기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 다음의 위기는 너무도 흔하게 발생하는 이민교회의 다툼과 싸움 속에서 경험했다. 어렵게 찾은 새로운 사역지는 교회 정치가 판을 치는 곳이었다. 화해와 중재, 대화와 만남의 역할을 해야 하는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도리어 내 편과 네 편의 편 가르기의 소용돌이에 빠져, 기도와 예배의 장소인 교회를 정쟁의 싸움터로 만들었다. 그런 분쟁 속에서 교인들끼리 큰 충돌이 있었고, 그 사이에 중재를 하던 필자에게 일부 교인들이 심한 욕설과 가벼운 폭행을 가했다. 복음을 전하다 돌을 맞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변호하다 침 뱉음을 당하고 욕을 먹은 것도 아닌, 단순한 교회 분쟁과 싸움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하나님 앞에 수치스러웠고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내 자신의 무기력이 괴로웠고, 그 안에서 자기 자리만을 고수하려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화가 났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을 향한 분노였고 아픔이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말했다. '이게 교회인가?' 그 말은 곧 '당신이 정의를 위해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목사인가?'라는 말로 들렸다. 또 다시 교회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떠나온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 온전한 예배와 참된 기도, 기쁨의 교제와 나눔을 소망하며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로부터 필자는 새로운 부름을 받았다. 그렇게 개척 교회를 시작하기로 한 첫 날, 필자의 아들은 심한 병에 걸렸다.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최대의 위기를 경험했다. '하나님! 새로운 교회를 원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치고 교회를 시작하라는 말씀인가요?' 이 기도만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반복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응답도 없었다. 그 분은 침묵하셨다. 하지만 아들은 살아났다. 우려했던 모든 문제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었고,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그 기회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초심을 갖는 것이었다. '처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 때를 기억하라.' '처음 고국을 떠나올 때가 가졌던 다짐을 기억하라.'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의 그 순수함과 열정, 겸손과 뜨거움을 기억하라.'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겨지는 것은 초심이었다. 그것이 이민 디아스포라 공동체 속에서 매 순간 찾아왔던 위기를 지나가게 하고 극복하게 하며 이겨내게 한 것이다.

이민교회의 디아스포라들은 매일 생존해 간다.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혹독한 등반처럼, 그저 숨을 쉬고 걷는 생존 그 자체만으로 위기를 극복해 낸다. 우리는 어린 아이가 잘 걷길 바라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새근새근 끊이지 않는 숨이 잘 쉬어지는 기본과 첫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민교회 성도들은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올 때, 기도하며 결심했던 것이 잘 이뤄졌는지 늘 그 때 마음을 돌이켜 봅니다."

고국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을 찾아 교회를 세우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이민 디아스포라들은 매일 아침만 처음 이곳을 올 때의 그 마음과 가장 먼저 주님을 만났을 때의 그 믿음, 그리고 맨 처음 이 땅에 내려 기도로 단을 쌓으며 결심했던 그 약속을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생존해 간다.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어디서 만나리라 믿는다. 잊어지지 않는 초심으로 다시 그 날을 소망하며, 마지막 편지의 펜을 내려놓는다.

김주용 / 시카고 기쁨의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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