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반대는 고집

순종의 반대는 고집

[ 목양칼럼 ]

윤석원 목사
2017년 04월 04일(화) 13:48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절기다.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지난 후 처음 오는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게 되어 올 해는 4월 16일이 부활주일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사순절 고난의 절정인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는 주님의 순종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사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으로 올라가셨다. 마가복음도 동일하다. 누가복음은 따로 기도하신 후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하셨다. 요한복음에서는 백성들이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4복음서 다 동일하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셨고 그 이유를 요한복음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도 기도하지 않고는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왕으로서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의 길을 가실 것인지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이 분명히 있었기에 그 고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심으로 자신의 고집을 내려 놓으셨다.

품성훈련에서 순종의 정의를 "나를 책임지고 있는 권위자의 지시를 즉시 기쁘게 순종하는 것"으로 내리고 있다. 그리고 순종의 반대를 불순종이 아닌 고집으로 정의하고 있다. 순종의 전제는 권위자와의 바른 관계다. 권위자와의 관계가 우선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의 권위자의 지시를 지체하지 않고 그 일 자체를 기쁘게 행하는 것이 온전한 순종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속에서 순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나의 고집 때문이다. 내 고집이 나의 권위자의 지시에 토를 달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르게 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이 권위자의 지시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이 고집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가 의의 병기가 아니라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도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뒤에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커녕 자신의 고집을 주장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고집부리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신다. 하나님의 일보다 자신의 고집이 앞선 베드로를 꾸짖는 예수님의 모습이시다.

십자가를 지기 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고집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고집을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로 고집을 내려놓고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이것이 순종이다.

이 사순절에 고난주간에 앞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사순절을 보내는 모습일까? 금식, 기도, 말씀묵상 다 귀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앞선 나의 고집,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고난주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말씀보다, 하나님의 권위보다 앞선 나의 고집가운데 하나를 내려놓는 순종의 고난주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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