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외출

할머니들의 외출

[ 기고 ]

손은식 목사
2017년 03월 07일(화) 14:33

종로쪽방촌 사역을 시작한지도 5개월이 넘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종로구 돈의동 피카디리극장 뒤편으로 형성된 종로 쪽방촌을 방문한다. 사역이라해봐야 거창한 것은 없고 그날그날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서 쪽방촌 주민에게 전해드리고 방 안에서 그분의 하고픈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함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이다. 몇 달 간 줄곧 방문을 하니 제법 친해진 쪽방촌 주민들도 있다. 간식은 일회용 지퍼백에 3천원에서 4천원 사이에서 허기진 배를 달랠 음식으로 준비한다.

그 가운데 90세가 넘으신 세 분의 할머니들과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이순재, 강정식, 김옥순 어머니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세 분 어머니 중에 두 분은 시대의 아픔을 가지고 계신다. 한 분은 일제시대 근로정신대를 다녀와 평생 혼자 살고 계시고, 한 분은 6ㆍ25 전쟁때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계신다. 전사한 남편은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전쟁 영웅이지만 그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쪽방촌에서 외로이 살고 계신다.

수개월 전 김옥순 어머니께 "필요한게 있으세요?"란 물음에 외출복 상의를 말씀하셔서 한 번 시간을 내어 사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입고 계신 외투가 색이 바랬고 그 한 벌 외에는 없다고 하셔서 꼭 어머니가 원하는 것으로 사드려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김옥순 어머니 뿐 아니라 두 분의 어머니가 더 계셨다는 것을 그 당시 잠시 잊고 있었다. 김옥순 어머니가 다음 날 "손 목사가 외출복을 사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두 분 어머니 중 한 분은 다음부턴 날 안 본다고 엄포를 놓으셨고, 다른 한 분은 영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되셨다.

이래서는 사역도 안 되겠다싶어 세 분 모두에게 "시내에 나가서 함께 옷을 사자"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겨우 마음을 풀어드렸다. 그리고 날을 정해 명동 롯데백화점을 함께 찾았다. 김옥순 어머니 댁에서 살림공동체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택시를 나눠타고 백화점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한 뒤 여성복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시라고 했다.

그 시간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드렸는지 모른다. 대충봐도 100만원이 넘는 옷들이 즐비한 곳에서 과연 이 분들이 어떤 옷을 고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살림공동체 사역자의 부축을 받으며 4층 여성복 매장을 한바퀴를 돌고 나서 원하는 옷이 없자 한바퀴를 더 도셨다. 그리고는 다른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트로 갔는데, 바로 앞 세일 부스에서 원하는 옷을 발견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세 분 어머니가 원하는 색상의 옷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50~60만원하는 점퍼를 7~9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올해 92세, 91세, 90세로 최소한 50년 이상을 종로 쪽방촌 좁은 골목에서 친자매 같이 사신 어머니들, 화신백화점 이후 처음으로 백화점에 왔다는 김옥순 어머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점퍼를 사줬다는 이순재 어머니, 마냥 어린 아기같이 기뻐하시는 강정식 어머니.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힘들고 고통 가득한 사연을 가지고 구십 평생을 사신 어머니 세 분과 함께 정말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스타렉스를 빌려 남이섬으로 봄소풍을 다녀오려한다.

 

손은식 목사   프레이포유&살림공동체
경동제일교회 교육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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