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세무민을 멈추라"

"혹세무민을 멈추라"

[ 기고 ] 惑世誣民ㆍ세상 사람을 속여 미혹시키고 어지럽힘

박상기 목사
2017년 03월 02일(목) 14:18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 온 국민은 실망과 배신감으로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게 나라냐?'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법을 규탄하고 자신을 태워서라도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한다며 시린 손으로 촛불을 들었다.

심지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나 아직 철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한목소리로 어른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급기야 국정 농단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절대다수의 표차로 국회에서 탄핵 되었고 지지율은 4%대로 떨어져 사실상 식물 대통령과 정권이 되어있다.

그 후 헌재의 심판 절차를 남겨두고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각종 언론은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종편에서는 전문 패널들을 출연시켜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을 파헤치고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등 이로 인한 국민의 정서적 피로감은 이미 한계에 달한 듯하다.

무엇보다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잘못을 인정하고 검찰이나 특검 수사를 통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던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종래는 '완전히 엮였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잘못을 거둬들여 버렸다. 때를 맞춰 죄인처럼 침묵하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급기야 촛불 민심을 '종북좌파'라는 색깔을 뒤집어씌워 진영논리로 갈라놓았고, 무슨 우국충정의 상징이나 되는 양 태극기를 흔들며 맞불 집회를 벌이는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때에 교회만큼은 신앙 양심에 근거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여느 때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처신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세상에 올바른 가치 기준을 제시하고 길잡이 역할을 하며 선도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오늘 같은 어지러운 정국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은 공감할 것이다.

따라서 세상이 어둡고 어지러울수록 교회의  사명과 책임은 더욱 커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교회는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회 정서상 정치적으로 비치기 쉬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정치나 사상과 이념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권을 챙기고 각종 비리로 헌법의 기본 질서를 짓밟는 상황에 대해 정의를 말하고 이에 맞게 처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계의 상징적인 지도자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되어 있고 국민통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불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대표할 만한 이름 있는 몇몇 대형교회는 설교시간에 공공연하게 태극기 들고 거리로 나가라는 선동에 입장을 달리하는 교인들과 마찰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매고 탄핵기각, 탄핵 무효를 외치며 태극기 군중들과 함께 행진을 벌이는 모습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게다가 하루면 몇 통씩 근거 없는 소위 찌라시 정보들을 분별없이 SNS를 통해 퍼나르며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의 모습에서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대체 무엇을 지키려는 것인지? 어떤 정당성을 보장받으려는 것인지? 진정 신앙 양심을 걸고 그러시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목숨을 담보하고 바른 소리를 내며 시대를 이끌겠다던 선견자적 소명은 어디 두고 어찌 그리 몰지각한 시류에 편승하여 세상의 편 가름을 부추기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불의를 용인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으란 말인가?

빤히 드러난 불의까지도 무시한 체 침묵하란 말인가? 예레미야 시대에 기울어져 가는 역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목소리를 냈든 선지자를 박해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국수주의자들의 대변자가 되어 "안전하다 평안하다"고 외쳤던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던지던 선지자의 입을 막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시대가 어지러운 판국에 세상이 더 크게 절망하게 하는 것은 덩치만 커져서 영적 중풍에 걸려 안주하고자 하는 오늘의 교회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필자는 안산에 거주하며 세월호의 비애를 누구보다 실감 있게 체감했고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슬픔을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근간에는 아예 대 놓고 잘못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후안무치를 보는 것이 큰 괴로움이 되고 있다.

그보다 더 원망스러운 것은 침몰하는 배 안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그들을 향해 끊임없이 울려댔던 거짓 안내방송이었다. "여러분, 현재의 위치에서 절대로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기울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향한 일부 거짓 지도자들의 혹세무민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퍼져가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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