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 목양칼럼 ]

김수원 목사
2017년 02월 21일(화) 16:06

요즘같이 시국이 어수선하고 정쟁거리가 생길 때면, 여과 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이 말은, 아이한테 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처럼 어리석은 일이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쓰기에는 적절치 않은 언사다.

이런 우문에 현명한 답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때로 공동체 안에서 관계성이 파괴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유력한 대선주자마저 주저앉게 할 정도다. 하지만 현실 여건은 이러한 우문에 현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이념적 틀 속에 우리 세대가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은 불행하고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처럼 살벌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좌우 사이에서, 보수와 진보 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삶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이럴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예수님이라면 무슨 답을 하고 이런 세대를 어떻게 사셨을까.'

우리 삶의 표상인 예수 그리스도는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편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놓고 자신의 이념 성향에 따라 진보나 보수의 시각에서 살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예수의 영성을 아전인수 격으로 자파(自派)의 편익을 위한 도구로 끌어들이는 것은 불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는 본래 편당(偏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시다. 그를 어느 한쪽의 아이콘으로 삼는 것 자체가 가당찮다는 말이다. 예수는 진보와 보수의 삶을 통째로 사셨고, 실은 그보다 상위적(上位的)인 삶을 사셨기에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갔을 뿐이다. 다만, 이러한 그의 삶을 부분적(下位的)으로 볼 때 우리 눈에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일단 예수의 영성을 보수와 진보라는 틀로 구분해 보자. 우선 보수적(保守的)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과 그와 관련된 일들을 유지, 보전하는 차원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눅 2:14상)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이것은 변하거나 포기하거나 양보하거나 할 수 없는 본질의 가치다. 예수의 공생애가 이를 잘 반영한다.

반면에 진보적(進步的)이란, 하나님이 관심(뜻)갖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샬롬'(평화)의 구현은 하나님의 우선 관심사다(눅 2:14하). 예수께서 일구어낸 변화와 개혁의 목적은 참된 '샬롬'의 임재에 있었다. 진보적 가치는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룸에 그 걸림돌을 제거하고, 더 온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창 1:31) 끊임없이 나아가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앞서 말한 보수와 진보적 가치가 함께 이루어낸 절정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성령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서로 적대적이거나 별개가 아닌, 새의 양 날개처럼 통합의 영성으로 하나 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은 선포되고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

통합 영성을 지니신 예수는 공생애의 삶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면서도 끝까지 섬김과 절제의 미덕을 잃지 않았다. 철저한 비폭력 주의자이자 사랑의 화신이었다.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꺼이 자기 생명까지도 내어 주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를 편 나누고 적대시하지 않았다.

죄(불의)와는 일절 타협하지 않았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상대의 약점을 가지고 악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죄를 거들도록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세 대결로 국면을 모면하려 하지도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참된 '평화'(샬롬)(사 65:25)를 심는 일에 전념하였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그의 몫이 되었다(막 15:39,빌 2:10). 이러한 그의 삶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저리도록 깊은 감동을 안겨 준다. 우리 주변에 이런 통합 영성으로서의 십자가 영성을 품은 진보와 보수가 있기는 한가?

필자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양심에 따라 때론 보수적 가치를, 때론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보수가 진보적 가치를 인정하고, 진보에 보수적 가치가 필요할 때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한번 보수면 영원한 보수다’라거나 ‘뼛속까지 진보’라는 표현은 복음적이지 않다. 간혹 진영론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변절자’라는 말은 더욱 그렇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때, 가장 필요한 인물은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다. 세상 이념에 매몰되거나 편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유 한 영혼으로 통합영성을 가지고, 시대의 물음에 대안을 제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통합영성은 단순히 어중간하거나 무기력한 중도(中道)를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정도(正道)'를 걸음을 뜻한다. 통합 영성은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망설임 없이 동행하는 영성이다.

그들이 예수의 영성을 품고 시대의 중심에 서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지금 같으면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를 균형 있게 움직여, 바른 복음의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오르게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할 것이다.

김수원 목사 / 태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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