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이름 갖기

존귀한 이름 갖기

[ 목양칼럼 ]

김수원 목사
2017년 02월 07일(화) 15:18

사람은 '이름'을 구분하여 부를 줄 아는 영특한 존재다(창 2:19).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 이르는 말이 이름이다. 이름에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인 경우 그 이름은 인격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이름이 때론 한 사람의 격(格)을 드러내는가 하면, 이름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이 있음이다. 그래서 어떤 이름이든 귀하게 여기고 잘 지으려 하고 또 제대로 불러주려 한다. 어디 인명뿐인가. 여타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지금의 교회로 부임하고 나서 교회명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물론 이름이 문제였다. '태봉'이라…. 지금이 언젠데 구닥다리 냄새 풀풀 나는 태봉이람? (태봉-신라말기 궁예가 세운 나라). 바닷가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귀에 익은 배 이름 같기도 했다.

'가까운 교회', '민들레 교회', '세상의 빛 교회', '높은 뜻 숭의 교회' 등등. 교회에 어울리는 격조 있고 시대에 걸맞은 정갈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태 이런 촌스런 이름을 쓰다니. 이 이름을 보고 누가 등록을 하겠나 싶었다.

원만히 개명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교우들의 절대 지지가 필요했다. 새롭게 등록하는 교우들의 의견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담임목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몇몇 교우를 제외하고는 별반 호응이 없었다. 촌스럽기는 해도 오히려 정감이 든다는 의견들이었다. 새로 등록하는 교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도 교회 이름이 갖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애당초 등록도 않았을 터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 온 가정이 등록하면서 교회 이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가.

흥분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느리 되는 이의 등록사유를 듣고서였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함자가 '태'자 '봉'자세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특별히 예비해놓으신 교회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한 가정을 등록하게 한 운명과도 같은 이름 태봉교회. 본래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태를 묻은 동산이라 해서 탯산 또는 태봉산으로 불렀고, 그 동산 자락에 있는 교회라 하여 태봉(胎峰)교회가 되었다.

알다시피 여기서 태는 모태(母胎)와 관련되어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게 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신비한 '생명의 산실'이 태가 아니던가. 어느 순간부터 교회 이름 속에 박힌 촌스럽던 글자(胎)가 교회의 존재 이유나 목적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교회 이름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또 어디 있겠나 싶어졌다. 무엇이든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하게 되나 보다.

작금, 이른바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그런 가운데 이 일의 당사자로 지목된 자와 그의 가족들이 개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름을 바꾸면 뭔가 운수 대통할 것으로 믿었거나, 아니면 모종의 일들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기대와는 다른 일이 생겨나고 만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일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사주팔자 따라 개명하여 인간의 운명을 풀어가려 할 것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구하며 각각 이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촌스런 이름이면 또 어떤가. 그 이름을 지닌 자들과 그에 속한 이들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이름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 아닌가. 부끄러운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랑스러운 영광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이다(히 12:2, 갈 6:14). 존귀한 이름은 이름 자체보다 그 이름을 지닌 자들의 가치 있는 삶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김수원 목사
'생명의 산실' 태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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