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언론 (4)언론의 바람직한 역할

교회와 언론 (4)언론의 바람직한 역할

[ 교회와 언론 ] "언론은 교회ㆍ사회의 자정장치"

문상현 교수
2017년 01월 31일(화) 16:30

문상현 교수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지만 언론사가(言論史家)들은 2016년을 한국 언론이 기사회생한 해로 기록할 것이다. jtbc, TV조선, 한겨레신문 등이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데 큰 활약을 하면서 모처럼 언론다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각종 오보와 선정적 보도를 쏟아내며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입에 담기 민망한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영화 '내부자들'과 '터널'에서 보듯이 각종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기자는 부패 정치인, 조폭 등과 함께 사회악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기자들 입에서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바닥을 치면 오를 일만 남는 것인가? 건국 이래 최대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권력 핵심을 정 조준한 비판적 보도와 열띤 취재 경쟁에선 세월호 참사 때 덧씌워진 오명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진지한 뉴스가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며 뉴스 포장에 몰두했던 언론사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발로 뛰며 연일 특종을 터뜨리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어떤 뉴스가 독자의 주목을 끌고 시장에서 팔리는 가란 질문에 의미 있는 답을 주고 있다. 언론다운 언론, 뉴스다운 뉴스, 그게 답이다.

한국 언론은 원래 문제투성이였다. 그 중 제일 큰 문제는 한국 언론의 정파적 속성이다. 정론지 혹은 대중지라는 이름으로 중립성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특정 정파를 노골적으로 편들어 온 것이다. 언론의 정파주의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끊임없이 부추긴 일등 공신이었다. 상업주의의 만연 역시 한국 언론을 병들게 만들었다. 종편 및 보도채널 허가, 인터넷 언론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등의 등장으로 살인적인 경쟁이 펼쳐졌다. 뉴스 수용자의 주목을 끌어 광고 매출을 높이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었고, 그 결과는 선정주의와 뉴스의 연성화로 나타났다.

한국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과 상업주의는 언론의 자사이기주의와 왜곡 보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국민의 알권리 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정치적 영향력과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느라 언론의 책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보도의 생명인 객관성과 공정성은 보신주의와 진영 다툼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한국 언론의 악습과 구태는 곪을 대로 곪아 마침내 세월호 참사 때 터져버렸다. 언론이 겪은 수모는 이미 얘기한 대로다. 하지만 수치와 모멸 속에서 성찰과 반성도 시작되었다. 그 성찰과 반성이 최순실 게이트로 언론이 살아나게 된 원동력일 것이다. 트라우마는 망각을 통해 치유되지 않으며, 상처는 곪아 터진 후에야 비로소 새살이 돋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다는 비판과 진짜 변했을까 하는 의심도 존재한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도 선정주의와 사건의 핵심을 빗겨난 보도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부패 권력과 타협해 누린 영화를 잊지 못해 민심과 괴리된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비난과 의심보다는 한국 언론에 대한 격려가 필요한 때이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성, 상업주의, 자사이기주의와 사실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실천이 어렵지 질문의 답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언론에게 부여된 공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데 힘써야 한다. 언론의 일차적인 기능은 사회현실의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언론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특히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 국민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정부의 통치행위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알권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언론의 일차적 책무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정보를 국민을 대신하여 수집하고 이를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언론이 정치권력이나 자본과 야합하여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은폐하거나 왜곡한다면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11월 언론학자 484명이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언론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산다'라는 제목의 시국 선언문에서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언론학자들은 "한국 언론이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혹은 권력집단에 의해 조종되면서 권력의 공모자, 호위자로서 기능해 왔다"고 비판하였다. 역사적으로 언론이 누린 자유와 사회적 영향력은 권력을 감시하라는 국민의 엄중한 명령에 기인한다. 언론은 감시와 비판을 통해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국민들을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할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 언론은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보도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여론 형성을 위한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공론장이란 다양한 생각과 의견, 그리고 관점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논의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국민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활기찬 공론장은 민주주의 작동에 핵심이다. 언론이 정파적 입장을 견지하거나 특정 집단에 특권을 부여한다면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전통적인 언론사의 여론 독점이 불가능해졌다. 의제설정 역시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매체의 확산으로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언론이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역할을 하던 시대에서 수용자가 게이트워처(gate-watcher)인 시대로 바뀌고 있다. 언론이 정보를 통제하고 진실을 은폐할 수 있었던 세상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말이다. 개방성이 시대정신인 디지털 시대에 언론 역시 자유롭고 참여적인 공론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기독언론의 역할 또한 다르지 않다. 일부에선 기독언론이 감시와 비판보다는 교계의 화합과 기독교의 선한 사역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언론의 공격적 태도와 기독언론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기독교와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 교리와 특성에 어두운 사회언론의 보도 태도는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구제활동과 선한 사역들은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언론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는 바람 역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적다. 사회언론은 기독교와 교회가 한국 사회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것이다. 사회언론이 교계 내 갈등, 교회 세습, 종교인의 과세, 목회자의 일탈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권력 감시와 자극적인 뉴스를 찾는 속성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교리와 특수성을 이해하는 기독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비판적 감시자로 일종의 '자정장치의 기제' 역할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2017년 새로운 해가 밝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내우외환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다. 정치적 난맥상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 불황과 예측 불가능한 국제정세, 청년 실업과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등 어디 한군데 희망을 찾을 데가 없다. 많은 국민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학자들의 선언처럼 나라를 살리기 위해 언론을 바로세우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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