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언론 (3)언론을 향한 교회의 기대

교회와 언론 (3)언론을 향한 교회의 기대

[ 교회와 언론 ] "언론이 公正 사회 앞당겨야"

이근복 목사
2017년 01월 31일(화) 16:16

이근복 목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필자가 1983년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사역할 때, 전두환 군사정권의 보도지침 등에 의한 언론의 통제와 권력에 순응한 언론의 왜곡보도로 인하여, 노동자의 권리향상과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산업선교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불의한 정권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함께 산업선교를 교회와 노동자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동원하여 영등포산업선교회는 회사를 도산시키는 반사회적인 과격불순단체이고 비성경적이라고 공격하였다.
올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개혁이 절박한데, 올해가 닭의 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닭은 베드로의 회개를 연상케 한다. 회개의 히브리어 단어 '슈브'는 "당신의 안에 숨겨진 신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라"는 뜻이라고 하니,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본질을 회복하는데 언론이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야고보서 3:8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언론은 우리 사회와 교회의 악인지 아니면 약이 되는지 성찰함으로써, 공공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확보하여 본질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선 언론은 사회와 교회의 사건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 사실보도는 언론의 관문이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본질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때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부실하게 보도하여 교회가 문제를 바르게 인식할 수 없어서 해결의 기회를 놓치면 교회와 한 몸인 언론도 함께 실패하게 된다. 

국민을 우롱하고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이번 국정농단 사건도 지난날 대다수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아부하여, 동조하고 은폐하거나 치밀한 현미경이 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보도하였기 때문이다. 언론은 심층적인 보도와 동시에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언론이 거울역할을 제대로 하면, 교회는 자정능력을 발휘하여 새롭게 나아가게 될 것이다.

불의한 힘이 길들여지지 않은 언론의 감시와 비판기능이 관건이다. 며칠 전 언론의 역할모델을 개로 비유한 어느 방송사 앵커의 발언을 새겨들었다. 개의 역할을 분류하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워치독, 즉 감시견이 있고, 또 권력의 무릎 위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랩독, 즉 애완견이 있고 ,이런 단순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가드독, 즉 경비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비견은 이미 그 자신이 기득권에 편입돼서 권력화되었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론 자신이 경호해왔던 그 권력마저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요란하기 그지없는 종편방송들을 분류하는데 제격이다. 교회언론도 길들여지지 않는 감시견(watch dog)으로 총회 기관지라 할지라도 교권과 대형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립성을 갖고 총회와 노회, 연합단체의 방향과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작동하면 언론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 언론은 감시견을 넘어서 나침판이 되어야 한다. 나침판 바늘이 예민하게 흔들리며 방향을 지시하듯, 언론은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과 시대적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즉 진정한 멘토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멘토로서 언론은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다가온 인공지능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각의 힘이 중요하므로, 언론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우도록 협력해야 한다. 목회자가 인문학적인 안목을 갖고 인간과 시대변화를 바르게 읽어 목회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지성적인 신앙을 갖추고 일상에서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멘트하는 참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성인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국면에서 기독교언론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참신한 매체개발에 힘쓰면 한국교회도 새로운 동력을 얻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언론은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신학교의 연구소나 기독교 전문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깊이 있는 정책과 대안을 구성하여 이를 교회와 공유함이 필요하다.

언론이 비판과 감시에 머물지 않고 신앙적 가치를 세상에 심어서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 정치가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성공과 물질주의 가치관을 넘어서는 참된 가치관이 뿌리내리지 못해서 그렇다. 나눔과 섬김, 화해와 희생 등 복음적 가치관을 세상에 구현하지 못하면, 선거에서는 늘 잘 살게 해주겠다는 인물이 당선되어 권력은 사유화되고, 정경유착으로 부패하고 사회의 공정성은 훼손되어 양극화는 심화됨으로 국가와 사회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조간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조사하였는데, 우리나라가 35개 회원국 중에 맨 꼴찌라는 보도였다. 이 질문에 72.4%가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OECD의 평균 88%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우리나라는 이제 제각기 살아갈 길을 도모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는데, 이렇게 사회관계망이 부실하면 개인들은 불안하게 살고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남북이 더불어살기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민족통일은 점점 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언론이 사회에 더불어 사는 가치관을 세우는 한편, 교회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공공성을 발휘하여 약자들과 동행하여 사회적인 신뢰를 쌓도록 자극하면, 한국교회가 새롭게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 

1965년에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세워 대화운동과 중간집단교육으로 사회개혁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강원용 목사는 방송윤리위원장, 방송위원장, 방송개혁위원장을 지내며 방송개혁에 많이 힘썼는데 특히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공익방송의 정상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방송독립은 그분의 오랜 숙원이었다.

오늘날 모든 방송이 앞 다투어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비리를 들추어내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국가를 만든 주범이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은 정체성 유지와 본래적 기능회복에 절대적이며, 분열된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더불어 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참 소중하다.

기독교 언론이 신실한 동반자가 됨으로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정신을 회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을 공정하게 바꾸는데 기여함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여, 교회가 새롭게 비약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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