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대원의 자세

찬양대원의 자세

[ 목양칼럼 ]

이재학 목사
2017년 01월 24일(화) 15:58

찬양대의 기원이라면, 출애굽기 15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고 뒤따르던 애굽 군사들이 바다에 수장된 직 후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면서 부터이다. 그 때 아론의 누이이며,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 많은 여인들 앞에서 소고치며 춤추며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찬양했다.

그리고 조직적인 상임 찬양대를 조직한 것은 다윗 왕이다. 다윗은 그의 말년에 열 두 지파의 열 한 지파를 군대로 편성하며, 나머지 한 지파 레위 지파는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섬기는 직무를 부여했다. 다윗의 찬양대는 레위인이어야 했다. 그들은 잘 훈련된 군사와 같이 잘 훈련된 찬양대원들이었다. 다윗은 찬양대원의 자격으로 실력을 묻지 않는 대신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여 익숙하게 되기까지 훈련한 사람을 선별했다.

다윗의 찬양대에 비해 오늘날의 찬양대원들 중에는 유능한 실력자들을 필요로 하여 전공자들을 유급으로 세우기도 한다. 찬양대는 음악을 전공해야만 하고 음악성이 뛰어나면 좋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찬양대원은 레위인으로서 훈련과 연습을 쌓은 사람이면 누구나 찬양대원이 될 수 있었다. 순위가 있고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비를 뽑아 번호 정하듯 하나님께서 기회 주시는 대로 봉사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찬양대는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은혜에 감격하고, 그 크신 위엄을 높이 경배하고자 하는 믿음과 겸손, 성실과 진실로 봉사하는 자여야 한다. 믿음과 진실을 잃어버리면 찬양대가 찬양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찬양대원은 실력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고, 익숙하게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비록 음악성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성실한 모습과 최선의 노력이 자신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논산훈련소에서 군 생활을 했다. 주일이면 훈련소의 연무대교회는 각 훈련연대에서 훈련받는 훈련병들로 가득했다. 연무대교회에서도 찬양대가 있었는데 잘 조직된 찬양대가 아니라 사회 있을 때 교회를 다녔던 훈련병들을 모아서 한두 번 연습하고 예배를 섬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머리를 빡빡 깎고 검게 그을린 훈련병들이 오합지졸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찬양의 모습과 은혜는 달랐다. 비록 박자와 완벽한 화음으로 찬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찬양하는 훈련병들에게는 정말 힘든 훈련생활 가운데 위로가 되는 찬양이고 간절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그 찬양은 예배에 참석한 모든 훈련병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는 찬양이었다.

필자의 교회는 두 개의 찬양대가 있다. 특별히 오전 8시 1부 예배를 섬기는 시온 찬양대에는 은퇴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어떤 때는 1부 예배 참여한 회중 보다 찬양대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이분들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찬양연습을 힘들다 하지 않고,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성가대원으로 설 수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감격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때로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박자를 놓치기도 하지만 찬양에 대한 열정과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만으로도 1부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끼친다.

교회는 설교가 은혜스럽고 잘하면 부흥되는 것으로 안다. 사실 그 설교자로 인해 많은 부흥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 중에는 그 교회의 찬양대의 은혜스러운 찬양으로 교회를 출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찬양대가 찬양대로서의 사명을 다할 때 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산 예배가 되고, 찬양대가 찬양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 예배는 형식적 예배가 되고 만다. 찬양대는 그 교회의 거울이요 얼굴이다.

성도가 처음 간 교회에 찬양대 하나만 보면 대개 그 교회의 신앙의 풍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찬양대원들은 뜨거운 기도와 말씀과 회개가 있어야 한다. 찬양도 목청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만들기 위해 찬양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천국에서 영원히 남는 것은 찬양이다. 그러므로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혜로운 성도로, 믿음이 있는 자로 찬양대원이 되었으면 한다. 찬양대는 예배의 시작이요 예배의 마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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