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키워드 개혁

2017키워드 개혁

[ 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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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3일(화) 14:17

2017키워드 개혁

본보는 2017년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올해의 키워드를 '개혁'으로 정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01회기 총회 주제를 '다시 거룩한 교회로'로 정하고 개혁을 통해 거룩한 교회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키워드 '개혁'이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두명의 신학자를 통해 점검했다.  <편집자주>

 

▶  교회의 개혁

한국교회 거룩성 회복 … '오직 성경'

올해 2017년은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교회(Schlosskirche)의 출입현관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유럽은 거대한 변혁 속에 있었고, 루터는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도시가 크게 발전했다(프로렌스, 파리, 베니스, 프라하 등). 도시에서 설립된 대학에서 학문이 전수되고 새로운 지식도 창출되었다.

루터도 1502년에 신설된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가르쳤다. 도시에서 시장이 발전하는 가운데 상인과 수공업자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계층이 등장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이들이(시민) 도시의 입법과 행정을 관장하는 의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더 이상 성직자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은 교회 권력의 경쟁자가 되었다. 또한, 절대 권력을 가진 교황의 권세가 14세기 초반이래로 약화되는 가운데서 공의회(Council)를 통한 교회개혁이 시도되었다.

1414~1418년에 독일 남부도시 콘스탄츠에서 개최된 공의회는 성직자의 도덕적 정화, 교회에 바치는 토지세금 납부 중단 등을 다루었다. 이렇게 중세시대 교회의 최고 권력자이자 온 유럽을 지배했던 교황이 그 권위와 위상에서 추락되던 시대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 종교개혁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인쇄술의 발전이었다. 루터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친구 크라나흐가 받아 적었고, 이 원고가 인쇄기로 수백 장 이상 인쇄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오늘날의 인터넷 매체처럼. 이런 식으로 독일 종교개혁운동이 주로 유럽의 북쪽 지역으로(덴마크, 스웨덴 등) 확산되었다.

유럽 중세시대의 교회 모습이 지금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잘 남아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유럽 기독교답사여행으로 찾아가보는데, 그 시대 교회의 거룩함은 건물의 장엄함과 내부의 화려함으로 꾸며진 것이었다고 파악된다. 꾸며진 거룩함이 교회의 위압적인 위엄을 조장하여 교회권력자의 지배력을 강화시켰을 것이라 짐작한다.

또한, 중세시대에는 한 동안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모니'가 성행했고, 또 루터가 반박했던 면죄부 판매 역시 성베드로성당 증축을 위한 일종의 모금성격을 가졌다. 이에, 루터의 개혁운동은 '오직 믿음'(선한업적이 아니라 칭의로), '오직 은총'(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 그리고 '오직 성경'(진리는 교황이 최종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원천은 성경)으로 진전되었다.

중세교회에 저항한 루터의 교회개혁은 예수님의 유대교 성전정화를 따랐다고 본다. 요한복음 2장에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19절)고 선포하시면서 그 성전을 정화하셨다. 예수님은 성전 뜰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변질된 현실과, 또 희생제사에 쓸 제물(소, 양, 비둘기 등)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거룩해야 할 성전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탐욕으로 넘쳐났다. 이에 예수님은 소와 양을 파는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고 또 돈 바꾸는 상인들의 상을 엎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사흘 동안에 (성전을) 일으키리라"(19절)고 선포하셨다. 이러한 성전정화는 종교행위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보는 대제사장을 향한 질타였다.

예수님의 행위를 목격한 유대인들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18절)고 따졌다. 예수님의 행위가 매우 돌발적이며 몹시 무례하다고 판단한 그들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대답하셨다. 그 대답은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시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유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성전을 눈에 보이는 물량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20절)고 반문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얘기했고,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과 더불어 세워질 보이지 않는 성전을 말씀하셨다. 동문서답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가 성전"(21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육체는 십자가를 지고 사흘 만에 부활한 몸이다.

거룩한 성전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이 성전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역사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그 몸을 이루는 성도들의 교회이다. 그 교회는 눈에 보이는 성전(건물)이 아니고, 사람들끼리 모이는 사적 모임도 아니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사람들의 교회이다.

이 교회에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는데 (…)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었다.”(행 2:43~45) 소통과 나눔의 표적과 기사는 '성령이 성육신'하신 사건이었고, 이것은 성육신하신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삶의 변화였다. 이로써 성육신의 교회는 교회 밖의 일상적 삶이 포함된 거룩성을 드러냈다. 중세시대 교회의 거룩함과는 전혀 다르다.

현재 한국교회는 아직도 여전히 산업화시대 도시화와 경제성장에 기반 한 물량적 '교회성장'을 그리워하면서, 그 성장이 멈춰버린 현실을 '교회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이 진단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은 저출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교회 역시 이 현실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학교가 없어지고 청년세대가 사라져가는(전체교인의 2%) 현실을 -괴롭고 아프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때,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이제 교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거룩성을 회복해야 할 것인바, 물량적 성장 패러다임을 떨쳐버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인 '새싹교인의 양육'에 힘쓰고, 또 예수께서 주인이신 '하나님 나라의 공적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오늘의 상황에서 새롭게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

임희국 교수/장로회신학대 교회사

 

▶  사회의 개혁

회심으로부터 사회개혁의 열매로

새해 2017년은 금융위기 10주년, 외환위기 20주년, 6월 민주화운동 30주년, 종교/기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작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을 해결하는 것도 개혁의 필수과제이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선교학회 대회의 주제는 '회심과 변혁'이었다.

사회변혁의 뿌리는 기독교인/교회의 지속적 회심으로 회심과 변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대회 주제는 보여준다. 필자는 이 대회에서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윤리적 결실을 거둔 1907년대부흥운동과 민족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기독교가 민족의 종교로 거듭나게 한 3.1운동을 언급하며 역사적인 두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이 한국교회의 회심에서 핵심적이며 한국사회변혁에 기여하는 조건임을 밝히고자 했다.

오늘날 청년/여성들은 한국사회를 '헬조선'으로 부른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은 청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기업 정규직에 입사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인 "직장 안은 전쟁터이고, 직장 바깥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직장 안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나 밀려나지 않기 위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직장 바깥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사회보장제도가 빈약한 사회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견뎌야 한다.

쌍용자동차의 해고사태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이 26명이나 되었다. 이들에게 '해고는 살인'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통계청 통계(2014년 8월)에 의하면 45.4%로 852만명이지만, 일부 전문가는 노동자의 50%인 1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현대자동차의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들고,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만든다"는 말처럼 업무상 큰 차이가 없는데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0~60%의 급여를 받는다. 더 큰 문제는 해고와 비정규직에서 여성노동자가 받는 차별이다. 정규직 남성의 급여에 비해 비정규직 여성은 30~40%를 받는다.

외환위기 당시 부부가 같은 직장을 다닐 경우 거의 무조건 여성을 해고했다. 그렇지만 한번 퇴직하거나 해고된 여성노동자가 재입사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서구는 노동자의 파업을 일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저들이 파업을 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파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조의 파업이라면 '빨갱이', '좌경용공'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고, 언론도 경제적 손실을 먼저 언급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을 만들기 일쑤다. 우리나라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총회가 작년 9월 채택한 '경제적 양극화 극복을 위한 화해지침서'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에 대한 대안들, 사회적 경제운동 방안들과 빚탕감 희년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재벌규제와 중소기업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덴마크가 행복지수가 1위인 국가로 된 이유 중 하나가 19세기말 이뤄진 노사정 대타협이다. 이러한 사회적 대타협은 그룬트비 목사가 만든 자유학교의 교육의 결과였다. 그는 덴마크 왕의 신민을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유학교를 19세기 중엽에 만들었다. 그 교육의 효과가 노사정 대타협으로, 150년 후에는 가장 행복한 국가로 결실을 맺었다.

한국교육은 "20세기에 교육받은 교사들이 19세기 교육방식(주입식)으로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폭력이란 일부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입시제도, 학벌사회, 등수에 따라 학생을 '알짜', '예비', '잉여'로 여기는 학교가 문제라는 교사들이 있다. 기독교교사들이 만든 (사)좋은교사운동은 '회복적 생활교육'을 학교폭력의 대안으로 제시하여 모범적 사례를 만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 책임자 선별처리(회개-용서, 부인-처벌), 재발방지 등이 필요하다. 총회의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를 향하여' 문서는 화해의 과정을 진실, 기억, 회개, 정의, 용서, 사랑이라 했다. 남북관계는 올림픽에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공존과 평화의 관계도 있지만 무력적으로 굴복시킬 적으로 여기는 자기분열적 태도를 보인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기독교인이 받은 박해라는 경험에 앞서야 한다.

한국교회는 북한의 핵개발과 전쟁을 막아야 하고, 사드 배치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무력적 충돌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총회의 '남북한선교와 평화통일을 위한 지침서'(2016)는 북한선교와 평화통일의 신학적 기반이 치유, 화해, 비폭력, 정의로운 평화, 생명공동체와 희년과 경제정의임을 명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유엔파리기후변화협약에 195개 국가가 동의했다. 총회는 2015년 9월 온생명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창립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지난 30년동안 성서연구 교재, 다양한 환경교육 교재를 개발하여 활동해왔다. 예장녹색교회협의회도 있다. 농민목회자들은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 앞장서서 지난 10년 동안 4차례 대회를 열었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볼 때 탈원전 정책으로의 변경이 불가피하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등 인류의 위기 앞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생활방식과 자연재생에너지 개발이 시급하다.

종교개혁가 칼뱅은 타락한 인간이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하지만 사회구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재화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로 흘러가야 하고 이런 일을 맡을 자가 집사라 했다. 임금은 하나님이 기업가를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것으로 임금체불을 신성모독이라 했다.

깔뱅은 제네바에 몰려드는 난민에게 취업교육을 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교사의 임금인상을 위해 시의회에 세 번 찾아갔다. 그는 교회 안에 영육 이분법이 있다면 이미 교회가 맘몬 우상을 숭배하는 증거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예배/신앙과 삶의 이분법이 우상숭배라는 칼뱅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황홍렬 교수/부산장장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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