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은 신이 아니다

상관은 신이 아니다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6년 12월 15일(목) 10:34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독일의 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던 경험이 있다. 세계 80여 개국의 자회사에서 연간 10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초대형 기업이었다. 그 회사 회장은 다혈질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해서 직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종종 보좌진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보좌진이 그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가져오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부성 전략을 제시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의 말이 자칫 정답으로 결론지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보좌진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최고 경영자로서 명철한 상황 판단을 내리기 위한 지혜로운 처사였다. 

그룹 본사로 발령 받고 한동안 필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에서 경영진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있었던지,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피력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의 가치가 유럽의 동료들과 다른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보좌진들은 상급자의 지시를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세부적인 일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조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보좌진의 가치는 상급자가 못보는 것과 잘못 생각하는 것을 알려주는 데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자정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요즘 청와대 비서관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왜 그들이 이토록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불법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검찰 조사에서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시켜서 한 행동이라고 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보좌관들은 그들이 해야 할 직언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스스로 찾아가며 문제를 키운 것이다. 

지시를 받는 입장에서 자신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직무를 유기한 데 대한 변명이지만, 조직의 수장이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는 지시를 거스르기 힘든 것 또한 현실이다. 보좌관이 직언을 한다는 것은 총체적인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옳은 일을 옳다고, 또 그렇지 않을 일을 사실대로 말하는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형성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든 정부든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자기 자신이 절대자인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는 옳은 일을 구분하고 바른 것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