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인의 환상

마게도냐인의 환상

[ 땅끝에서온편지 ] <2> 선교소명서

장황영
2016년 12월 01일(목) 10:21
▲ 장황영 선교사 부부.

사도행전 16장에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했던 그 유명한 '마게도냐인의 환상'이야기가 있다.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특별히 선교사로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선교에 대한 소명을 말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어떤 사람은 선교사역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사도바울이 경험했던 것처럼 음성이든 환상이든 꿈이든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분명한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견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이므로 어떤 종류의 특별한 소명도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공산화된 후 미국에 돌아가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던 허버트 케인은 그의 저서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이란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두 견해가 다 틀렸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흔히 집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 했다. 반면 두 번째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교지에서 유익을 끼치기 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고 실패와 좌절감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마게도냐인의 부름'은 이미 전임 사역에 임하고 있는 사람에게 개입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문제라고 했다.
 
나도 허버트 케인의 견해에 동의한다. '마게도냐인의 환상'은 선교사로서의 소명이라기보다 사역을 함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에 관한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 '마게도냐인의 환상'은 성령님의 인도에 관한 말씀이자 선교에 대한 소명의 사건이 되는 은혜가 있었다.
 
선교사로 인선받기 위해서는 총회 선교부에서 요구하는 많은 서류들을 구비하여 제출해야 한다. 1995년 당시 그 가운데 하나가 '선교 사명서'였다. 그런데 나는 이를 '선교 소명서'로 읽었다. 전자는 모두가 복음 명령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왜 내가 선교를 해야 하는지 그런 각오를 말하면 된다. 그러나 소명은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구체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분명한 부르심이 없으면서 '선교 소명서'를 써서 제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하나님의 확실한 부르심을 받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와 내 아내는 각각 응답을 받았다. 놀랍게도 응답의 내용이 같았는데, 그때 선교에 대한 소명으로 받은 말씀이 바로 '마게도냐인의 환상'이야기인 사도행전 16장 6~10절 말씀이었다. 아내 박연수 선교사는 말씀과 함께 이 말씀을 토대로 한 찬송 273장까지 받았다.
 
선교사 인선위원회가 있는 날이었다. 인선위원회가 있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렸다. 순서지를 받고는 나와 나의 아내는 약속이나 한듯 서로를 쳐다보며 놀랐다. 그날의 설교 본문이 사도행전 16장 6~10절 말씀이었고, 설교 후 찬송이 273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본문은 흔히 선교 사역에 자주 인용되는 본문이기에 꼭 우리에게만 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 설교자로 강단에 서신 노회장 목사님의 설교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이자,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선교사님들, 내가 선교사님들께 말씀을 들어야지 내가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그냥 오늘 본문 그대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단을 내려오시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서로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의 말씀임을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소명은 나의 사역의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곳이기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직들로부터 이전에 문제해결을 위해 비엔나에 오셨던 총회 선교부 총무님이 돌아가시며, "이 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이 오셔도 안 된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내 속에서는 "나는 된다"고 외치는 음성이 있었다. 그것은 내게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부르셨기에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장황영 목사
총회 파송 오스트리아 선교사
비엔나 한인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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