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헷센의 필립

43/헷센의 필립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야심넘치는 행보, 중혼으로 오점

김인주 목사
2016년 11월 29일(화) 13:49

필립 백작(1504-1567)은 종교개혁에 앞장선 제후였다. 성년이 되기 전부터 통치를 시작했고, 야심에 넘친 행보로 독일왕이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였다.

작센의 공작 게오르그의 딸인 크리스티나와 일찍 결혼한다. 게오르그는 끝까지 종교개혁을 수용하지 않고 루터를 괴롭혔던 영주였다.

작센과 헷센의 결혼동맹은 필립과 크리스티나의 결합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남매가 다시 결혼하여 이중으로 튼튼하게 결속을 다진다.

하지만 이들의 정략결혼은 좋은 부부관계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결혼한 직후부터 외도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나이가 든 다음에 필립의 시선은 누이의 궁정에 있는 마르가레테에게로 향하였다. 그 어머니는 정식으로 결혼하여야만 딸을 줄 수 있다고 버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혁자들에게 질문하였다.

개혁자들도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혼하는 길보다 살짝 우회하는 방법으로 이중결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차악을 택한다는 변명이다.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서 개혁자들은 필립이 품었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었다. 그 의견서가 작성된 날이 1539년 12월 10일이다.

개혁자들은 순진하게도 비밀이 지켜질 것으로 생각했을까. 작센 궁정의 공작부인이 바로 필립의 누이였다. 이 사건은 드러나면서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호재를 만난 황제는 이를 통해 슈말칼덴 동맹을 압박하였다. 이제부터 백작은 황제의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기세가 꺽인다. 

필립과 크리스티나 사이에서는 열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헷센이 넷으로 분할되어서 그들에게 상속되었다. 마르가레테도 여덟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 후손은 없다.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부도덕은 사필귀정으로 귀결되었다.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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