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순종이다

선교는 순종이다

[ 땅끝에서온편지 ] <완> 선교인가 아닌가?

차훈
2016년 11월 25일(금) 15:55

'선교는 순교다'라는 표어를 본 적이 있는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해서 그 말의 진의를 두고 한동안 생각해본 적이 있었네. 순교를 각오 혹은 불사하고라도 선교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겠고 순교할 때까지 선교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
 
어쨌든 선교는 그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역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했네. 왜냐하면 선교는 일단 영적 최전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일이고 그다음부터는 그 전선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대적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친 일이겠기에.


요즘 우리 필리핀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사역하는 선교 전우들이 여기저기서 육체적으로 정신 심리적으로 부상을 당하고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네. 죽기 위해 선교지로 보냄 받은 선교사들이 열심히 사역하다 죽었다는 소식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일면 자랑스럽기까지 하지 않을까? 세상에 그토록 무의미하고 덧없는 죽음이 많은 가운데 주님의 뜻을 따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가히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가 될 수 있을 터.
 
연전에 한국을 잠시 방문한 때에 선교 통신을 통해 일산 암센터에서 말기암을 품고 고통하는 동료 선교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병한 적이 있었네. 그야말로 열악한 오지에서 사역도 열심히 하고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공부도 열심히 한 분이며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윽고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주님이 자기 생명을 조금만 더 연장시켜 주시면 좋겠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네. 사역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 우리는 함께 울며 기도했지만. 결국 얼마 후 그가 주님께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네. 그때 문득 오래전 평생을 인도 선교에 헌신하다가 은퇴 후 후학들을 가르쳤던 교수님의 선교학 첫 강의 서두의 이야기와 질문이 떠올랐네.


내용인 즉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영국으로부터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 땅에 와서 사역지를 향해 기차여행을 하던 선교사 가족이 집단으로 열병에 걸려 지나치는 역마다 자녀들을 한 명씩 묻고 또 묻고 가다가 급기야 마지막까지 버티던 선교사마저 목적지에서 도착하여 죽었다는 이야기였네. 물론 선교는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질문은 "그 선교사는 과연 선교를 한 것인가? 아닌가? 다른 말로 선교사로서 성공한 사람인가? 실패한 사람인가?"였다네. 우리 학생들의 대답은 분분했지만 노 교수는 말했네.
 
"그 선교사는 틀림없이 주님 앞에 인정받은 선교사였을 거라고. 왜냐하면 선교는 사역이기 이전에 순종이기 때문에."
 
이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고 있네. 그토록 자신을 불태우며 이룬 업적들이 과연 주님의 아신 바 되었을까? 한참 만에 '선교는 순교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네.
 
영적전투의 본질은 내 안에 있고, 대적 중의 대적은 바로 나이며, 나를 주님의 뜻에 굴복시키며 순교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선교가 시작될 것이 아닐까? 선교의 종국이 순교가 아니고 나를 죽이는 순교가 선행될 때 비로소선교가 시작되리라 생각하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양화진을 들러 그들의 순교적 선교를 다시 보고 싶네. 그리고 나의 순교와 선교를 진지하게 다시 점검해 보아야겠네. 필리핀 안티폴로에서.

차훈 목사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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