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앞자리와 아버지

예배의 앞자리와 아버지

[ 기고 ]

정재용 장로
2016년 11월 22일(화) 14:14

예배당이 아무리 넓어도 암묵적으로 '지정석'이 있다. 그건 어떤 한 사람의 자리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뜻이다.

누군가 그 사람을 찾으려고 할 때는 '지정석'으로 눈길을 돌리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혹여 교인들은 설령 일찍 왔더라도 누군가의 '지정석'은 그 사람이 앉기까지 비워둔다.

아버지 자리는 필자가 성가대석에 앉아 바로 보이는, 강단에서 다섯 째 줄, 중앙 분단 맨 왼쪽이었다. 출입문에서 한참 걸어 들어오셔야 하는데도 아버지는 한번 거기 앉으시더니 매번 똑같은 자리에 앉으셨다. 아버지의 지정석이 된 것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여든 중반에 들어서자 본인의 자리를 출입문 쪽으로 옮기셨다.

"아버지, 걸어 들어오시기 불편해서 그러셔요?"라고 물었더니 "화장실 가기 좋아서"라고 하셨다.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혹여 실례를 할까 싶어 뒷 자리로 가신 것이다. 그러시다가 여든 여섯 되던 해 예배당을 나가, 주일에도 집에 계시게 되었고 몇 날이 못 되어서 돌아가셨다.

강단에서 멀어 진다는 것. 그렇다. 예배당을 점차 빠져 나가는 게 인생이다. 언젠가 모두 이 예배당을 나간다. 그 사람의 지정석은 또 다른 사람의 자리가 된다.

'앞 자리는 복된 자리, 일찍 오신 분은 앞 자리부터 앉아 주십시오.'
자리 안내를 위해 띄운 화면 글귀를 보고, 처음엔 옛날 부흥사들이 쓰던 말을 아직도 쓴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는데 다시 생각하니 마음에 와 닿는다.

'살아 있다는 건 복된 것, 강단 앞 자리에 앉는 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립다. 코 끝이 찡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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