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테오도어 베자

<37> 테오도어 베자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김인주 목사
2016년 10월 18일(화) 11:06

테오도어 베자(1519-1605)는 칼빈의 후계자가 되어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역하였다. 시 모음집인 '유베닐리아'를 출간하여 명성은 얻었지만 온갖 비방과 모함에 시달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병을 앓게 된다.

결국 베자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였다. 고국인 프랑스를 떠나 제네바에 도착한 날이 1548년 10월 23일이었다. 4년 전에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대중 앞에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내심으로 개신교신앙을 추구하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로마 천주교의 예비 사제로서 성직록을 받고 있었다. 양심의 고통에 시달리던 베자는 아내 클로딘 데노즈(Claudine Denosse)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갔다.

먼저 로잔에서 10여 년 헬라어를 가르쳤다. 1559년에 칼빈이 제네바에서 오랜 숙원이던 아카데미를 창설하게 되면서 그 책임자로 평소부터 가장 적절한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베자를 초청하였다. 두 사람은 동문수학한 형제의 인연이 있다.

칼빈이 오를레앙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멜키오르 볼마르에게 배웠는데, 당시 9살 소년이던 베자도 그 문하생이었다. 열 살 차이가 있었으니 친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 총명한 소년을 눈여겨 보고 기억했다고 보인다.

칼빈의 후계자로서 베자는 개혁교회의 책임있는 신학자요 교육자로서 어려운 시대에 사역하였다. 신약학에서는 베자 사본으로도 유명하다. 헬라어와 라틴어를 대조하여 편집한 신약성서를 출판하였는데, 라틴어는 직접 번역한 본문을 활용하였다. 그의 헬라어 신약성서는 100회 이상 인쇄되어 퍼졌다.

교리 중에서는 예정을 중시하였다. 칼빈을 예정론 혹은 선택의 교리의 대가로 잘못 해석하는 일이 아직도 계속된다. 그를 앞뒤에서 감싸고 있는, 쯔빙글리와 베자가 예정교리를 매우 강조하였기에, 착오가 일어난다.


 <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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