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나를 쓰시는 이유

주님이 나를 쓰시는 이유

[ 목양칼럼 ]

조성욱 목사
2016년 10월 04일(화) 13:54

사도행전은 인물행전이라고도 불리운다. 1장에서 초대교회 공동체의 지도자 선출과정이 기술되어있다. 사도의 직무를 버리고 제 길로 간 가룟 유다 대신 그의 자리를 메우려는데 지도자 선출이 의제로 제기된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2)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이 첫번째 조건이었고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함이 두번째 조건이었다. 120명의 초대 예수 제자 공동체는 이 조건에 적합한 2명을 추천했고 그 후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먼저 추천된 사람을 살펴보자. 요셉과 맛디아다. 성경기록상 요셉은 득표수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앞에 등장한다. 별명도 두가지다. 바르사바와 유스투스. 바르사바는 아람어로 사바의 아들(풍요의 아들, 후덕한 사람)이란 뜻이고 유스투스는 정의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한편 2위로 천거된 맛디아는 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며 단지 이름만 언급된다. 뜻을 추론해 보면 맛디야는 맛타티야(하나님의 선물), 혹은 맛티야(하나님의 사람) 혹은 못티야(하나님의 죽음^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초대공동체는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뒤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식의 제비뽑기를 한다. 결과는 의외였다. 맛디아였다. 왜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히브리 대학의 박사학위, 통합측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출신 목사 등 화려한 스펙이 선발기준인가? 신대원 입학시험을 치룰 때 성경과 영어시험이 첫 번째 선발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경은 필수이지만 영어는 선택임에도 굳이 그 기준을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인가? 목회가 영어해독능력과 무슨 직접적 연관이 있단 말인가?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선택의 절대기준은 아닌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발기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임지를 구하지 못한 어느 목사가 주님께 이런 기도를 올려드렸다. "하나님 혹시 사람들을 써 보시고 그 중 불충하거나 게으른 종이 있어 그 자리를 바꾸시려면 부족한 저를 사용해 보심이 어떠실런지요? 만일 써 주시기만 한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 품에서 기도하고 어머니 눈물 먹으며 잠을 자던 모교회에서 6년째 담임을 하고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니 다음의 고백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격이 없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기 때문에 목회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난 무릎목회를 한다. 감히 고개를 들 수 없기에 그래서 난 거름목회를 한다. 퇴비가 되어 교회 초장이 풍성해 지도록 그래서 난 타잔목회를 한다. 정글의 법칙에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닌 하늘 밧줄을 붙들어야 사는 길을 알기 때문에 평광교회를 부임할 때 주께서 주신 세가지 말씀이 떠오른다.

축복목회,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잠 11:11), 충성목회,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성실목회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 27:23).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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