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지게꾼' 이야기

'설악산 지게꾼' 이야기

[ 기고 ]

강흔성 목사
2016년 10월 04일(화) 13:52

TV에서 설악산 지게꾼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59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80kg 이상의 짐을 지게에 지고 설악산 흔들바위 근처에 있는 사찰까지 올라간다. 키 157cm의 작은 체구에 자기 몸집보다 큰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내 호흡이 가빠오는 듯하고 등에서 땀이 나는 것 같다.

16살 때부터 지게를 지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43년째 하는 일이다. 요즘이야 무거운 짐은 헬리콥터로 산 정상까지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수 십 년 전에는 모두 다리품을 팔아야 했을 텐데. 그래서 냉장고도 지고 올라갔단다. 젊을 때는 120kg까지 짐을 지고 올라갔단다.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냉장고를 홀로 등에 지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더니 특별한 요령이 있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2~3시간 동안 자기 몸무게 이상의 짐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것을 어떻게 요령만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본인도 스스로도 자신은 마치 지게를 지고 살도록 몸이 만들어졌나 보다고 말하듯이 사람이 아닌 기계처럼 움직인다. 설악산은 맨 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든데 저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는 것을 보니 분명히 요령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80kg이상의 짐을 사찰에 내려주고 받은 돈은 고작 6만원이다. 지게꾼은 6만원을 손에 쥐고 부지런히 내려와 마트에 들러서 쌀과 라면을 샀다. 5만8천원을 지불했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양식을 사나 싶었는데 8년 전부터 독거노인에게 쌀과 라면을 전하고 있단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사람 바보 아냐?' 하는데 독거노인의 손을 잡고 오래 사시라며 친자식도 할 수 없는 스킨십을 한다.

그의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독거노인 뿐 아니라 동네 경로당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도 시켜드린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이 시대 의인같았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그토록 찾아도 없던 10명의 의인이 바로 여기 있었다. 예루살렘 성에 한명의 의인이 없어 망했는데 바로 그 의인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할머니 집을 나온 지게꾼은 자기 집으로 갔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인가. 아내는 장애인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결혼 후에 무슨 장애를 입었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결혼 전부터 장애인이었다. 지게꾼은 아내가 장애를 입어서 자기의 도움이 있어야겠다 싶어 아내로 맞이한 것이란다.

가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 지순한 로맨스를 보긴 했지만 지게꾼의 아내를 향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이다.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르는 그 우직함이 만들어가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이다. 불편한 아내의 몸을 보듬고 아내의 손을 쓰담는 지게꾼의 얼굴은 마치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날 지게꾼은 아들을 보러 간다. 그런데 아들도 지체장애인이다. 아들이 어려서 장애를 앓고 있을 때 온전한 부모의 손길을 주지 못해 장애인시설에 맡기고 가끔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 얼굴과 판박이다. 말끔하고 순진하게 생긴 아들을 안고 불쌍히 여기는 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래전 아들에게만 과자를 사다 주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과자를 사주니까 그들이 너무 좋아해서 그때 비로소 나눔의 기쁨을 알았단다. 지게꾼은 앞으로 6년 정도 더 지게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게 일을 하고 돈을 벌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나누고 죽고 싶단다.

지게꾼이 40년 넘게 무거운 지게를 지고 설악산을 오르내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주변에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게를 지는 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을 오르는 그 힘은 바로 사랑이었다. 자기 몸집보다 크고 무거운 짐을 지고 몇 시간을 오르는 그 힘은 바로 요령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지게꾼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 살을 찢기고 피를 쏟기까지 다 내어주신 그 십자가 사랑이 오늘 내 안에 뜨겁게 느껴진다. 지게꾼의 사랑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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