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교회로 돌아가자

원형 교회로 돌아가자

[ 땅끝에서온편지 ] <4> 섬기는 리더십

차훈
2016년 09월 08일(목) 11:10

친구 잘 지내셨는가? 이곳은 제대로 우기를 맞아 거의 한 달째 매일 비가 오고 있다네. 집안에 온통 곰팡이가 피고 빨래를 해도 퀴퀴한 냄새가 나지.


우리 필리피노에게는 이 때가 건강상 아주 취약한 시기인데, 아닌게 아니라 내가 아들처럼 키우는 티모데라는 청년이 독감으로 며칠을 앓더니만 이번에는 내가 나흘째 고열과 기침으로 시달리고 있다네.
 
그리고 오늘은 멀리 살고 있는 성도 한 분이 집에서 기르는 오리가 낳은 알이라며 몇 개를 삶아 와서 며칠째 입맛을 잃어 금식 아닌 금식을 하고 있는 내 앞에 가져다 놓아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이 글을 쓰고 있다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베푸는 위치에 있지만 때로는 현지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받는 것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네.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2인칭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는 나를 사랑해라.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도 너희의 사랑이 필요하단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무었이겠나? 선교사가 되면 자꾸 주려고만 하고,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데, 앞으로는 받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기도 부탁도 하면서 가야하리라.
 
몇 달 전, 미국의 어느 한 선교단체가 개발한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었지. 타이틀이 익숙해서 무슨 특별한 기대는 솔직히 없었다네. 그런데 새삼 잊을 수 없는 배움 한 가지는 '섬기는 리더십'은 제자 혹은 섬기는 대상이 성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었네. 우리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이 제자 단계를 넘어 사도로서 자기보다 더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기를 희생하고 모든 것을 부어주는 바로 그 리더십이었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초대교회의 핵심 사역이었다는 게지. 섬김으로 남(제자)을 세워주는 사역. 그것은 주님께서 간곡하게 위임하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한 것이었어.
 
그런데 말이지. 나를 비롯하여 주변을 돌아보면 리더라고 칭하는 사람은 많은 데, 진정 '섬기는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러니까 앞으로 사도로 커 나갈 제자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야.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남미 어느 나라에서 거의 15년을 넘게 사역을 하다가 부득이 한국으로 철수하게 된 선교사님의 슬픈 이야기였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사역지를 떠나는 날 선교사님 부부는 공항을 나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지. 택시를 타고 공항을 가는 길에 아무 말 없이 지난 사역을 돌아보던 선교사님 눈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네.
 
"지난 15년 나름 열심을 다해 사역하고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데, 성도 중 누구 하나 '목사님 제가 공항 배웅해 드리겠습니다'라며 나서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까?를 생각할 때 한없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지.
 
'학생은 있으나 제자는 없고, 성도는 많으나 영적 자녀는 없다.' 그런 말 아닐까? 거꾸로 말하자면 '선생은 있되 스승은 없고, 목회자는 많되 영적 아비는 없다'는 말도 되겠지.
 
이 땅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일이 있는데 우리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들과 공모하여 교회 건물을 세우고는 그 때부터 주변에 어디 괜찮은 전도사 혹은 사역자 없냐고 찾아다니는 거네.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구인광고도 하고. 먼저 현지인을 리더로 키워 내지 않고 교회 건물을 지은 후에 주변에 고분고분하고 쓸만한 사람을 찾아 고용하여 세우는 거지.
 
언제부터 순서가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영적 지도자)이 먼저고 건물은 나중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싶고 또 교회 건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전통 교회 건물 고정 관념을 벗어나서 가정이나 어느 공간 빌려서 모이다가 현지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공간 문제도 해결해 보도록 참고 지켜보는 선교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은 데. 그런데 현실을 보면, 선교사들이 그렇게 한국 교회와 함께 힘을 모아 세운 교회 건물이 하나 둘 늘어나 많아지면 어느 한 군데에서 목회할 수도 없고, 또 자유롭게 설교할 만한 언어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어쩌겠나. 교회당을 세웠으니 사람 사다가 세워 유지하는 수밖에. 결국 보스 선교, 혹은 관리 선교를 하게 되고 한국에서 오는 비전 트립 팀을 받아 보여주고 사진 찍는 관광 선교를 하게 된다는 게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을 고용하고 써 먹으려고는 하지만, 정말 너는 나의 피를 먹고 살을 먹고 네가 살고 나보다 더 나은 지도자가 되어라 하는 종된 리더쉽은 참으로 보기 힘들다는 게야.
 
그런데 그 모습 어디서 많이 본듯 하지 않나? 그래 바로 모국 교회의 모습이었어. 언제부터 그리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교회는 미래 영적 지도자들을 키워내고 세우고 또 확장해가는 것이 본 모습이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목회자를 직원 채용하듯 이력서를 보고 테스트를 한 후 청빙을 하고 세웠다가 또 불협화음이 생기면 쫓아내고 했나 말이지. 왜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 하면서 그 모습이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조차 없느냐는 게야? 어디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원형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네. 주님께서 디자인하신 바로 그 교회로 말일세.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세나.

차훈 목사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