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

[ 땅끝에서온편지 ] <3>선교참회

차훈
2016년 09월 01일(목) 10:36

친구, 이 글을 쓰면서 내 얘기를 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들의 얘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잠깐 갈등하다가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 이야기인즉 後甲 인생을 시작하면서 길지 않지만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공생애 ? 30년을 넘도록 지난 온 날 들을 되새기면서 말하자면 '선교 참회'(mission confessions)를 해야만 하겠다는 것일세.

 요즘 들어 그동안 선교사로서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네. 선교사는 하나님께 부름 받아 하나님의 지상 명령 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일진대, 나는 이제껏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 나라 의식과 관점으로 사역에 임하였다기보다는 우리 예장 통합 교단 그리고 지극히 한국 교회적 관점과 신학으로 사시적(斜視的)인 사역을 심지어 문제의식조차 없이 이제까지 해왔다는 것이야. 그도 그럴 것이 20대 예수를 만나 회심 이 후 반 평생 넘도록 우리 교단 교회 속에서 자라고 광나루에서 뼈가 굵었으니 내가 어딜 가겠나?

그러나 선교사들의 대선배이신 바울 사도를 보게나.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모든 것, 즉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뛰어 넘는 세계적 하나님 나라 선교를 하시지 않았나? 그런데 오늘 우리는 왜 그리도 우리들의 좁은 세계를 넘어가지 못하는 건지.

소위 타문화권 선교사임을 자처하면서도 한국 교회 문화와 한국적 사고방식에 고착되어 선교사랍시고 이제까지 행세를 해 왔는데 그래도 그들에게 쫓겨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이 땅의 착한 사람들의 이해와 포용력 때문이란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거지.

얼마 전 8.15 광복절이 다가왔을 때, 우리 동네 어느 열심이 충만한 선교사님이 대사관에서 나누어 준 태극기를 선교사 가정들에 배포했고,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대문 밖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서로에게 애국자 운운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네.

명색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내가 봐도 어이가 없는 일을 우리는 선교지에서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사고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약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판적인 현지인이 봤다면, 저 사람들은 우리 땅에 자기나라 깃발을 꽂는 정복자로 왔는가? 하는 반감을 가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겠나?

오래전 스페인 군대가 필리핀을 침략하여 정복한 후 성벽을 둘러 세우고 그 안에 선교기지를 세워 선교가 아닌 스페인 카톨릭 문화와 이익의 지경을 넓혀 가며 이 땅을 유린한 적이 있었는데, 왠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스치는 게야.

오늘 우리 선교사들이 교단과 교회의 경계 안에 묶여 있는 동안, 우리는 거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 교단 및 교회들과 협력하고 상호 보완하는 동반자적 (partnership) 선교의 당위성을 보지 못한 채 오히려 다른 교단과 교회 심지어 현지 교단이나 교회와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을 일삼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다못해 세상에서도 공동 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도 연합군을 형성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대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주님 안에 하나요. 마지막 대추수기에 주님의 동일한 지상명령아래 함께 부름 받아 같은 전선에 배치된 선교사가 되어서 자기만의 전략을 가지고 각개약진을 하고 있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일세.

몇 년 전 외적으로는 큰 교회 담임 목회를 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자신의 평생 목회를 돌아보고 자기 교회 중심, 땅 위의 축복 중심으로 목회하였던 것을 회개하면서 선교 중심적 교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항공모함 선교론”을 펼치며 애쓰셨다 던데. 요즘은 그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가 되었나 보이.

우리를 부르고 요청하는 그 땅과 거민들은 정작 외면한 채, 소위 몫 좋은 전략 거점 도시에 몰려들어 한국 교회 손님 호객행위를 일삼고 이 땅의 거민들을 상품화하는 선교시장을 만들며 시기 질투 경쟁하는 모습 속에서 그 무리의 한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서, 다시 오셔서 계산하실 주님을 생각한다면, 경악스러운 일이 되겠지. 그야말로 가야 할 곳을 가지 않고 가고 싶은 곳만 가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선교의 총 사령관이신 주님이 보실 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선교지에서 인적, 물적 중복 투자에, 전략도 상호 이해도 없는 무질서한 선교가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 자괴감은 참으로 크다네.

우리나라 면적의 세 배나 되고 1억이 넘는 인구가 있는 필리핀에 한국 선교사 (5년전 통계로 공식 파송 선교사 수가 1,250명 가량이니 지금은 2,000명이 넘는 한국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추산됨)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과 중부 루손에 밀집되어 있는 것을 현실은 무언가 잘못 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은가? 심지어 같은 교단 선교센터나 신학교가 지척의 거리에 세워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으니 유구무언이지.

약 5년 전 우리 pckmp 필리핀 선교 30주년을 기념하며 복음주의 연합 교단의 감독을 강사로 모신 적이 있는 데. 한국 선교사들을 너무 잘 알고 계신 이 분이 간곡한 어조로, 한국 선교사님들 서로 잘 협조하시고(서로 싸우지 말고) 우리 필리핀 교회의 모범이 되어 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갔었지. 오죽하면 필리핀 보수교단의 대표가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해야만 했을까?

핑계 같지만, 이렇게 한국 선교가 각기 좋을 대로 하는 사사시대를 만들어간 원인들 중에는 우리 한국 교회의 역할도 좀 있었지 않나 싶으이. 언젠가 들은 우리 동네 선교사의 한숨 섞인 푸념이 생각나네. 자기는 정말 주님의 감동으로 무 교회 농촌 지역으로 가서 사역을 했으면 했다는 게지. 그런데 후원교회가 허락을 하지 않아서 갈 수 없었다는 거야.

이유인 즉은 방학 때마다 정기적으로 한국 교회 청소년들이 선교지 방문을 하는 데, 자기들의 후원 선교사가 수도권에서 너무 먼 곳으로 가면 이용? 하기가 불편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네. 그리고 정 그렇게 가고 싶으면 사직서를 내고 가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나 뭐라나. 작은 일례이지만, 참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인지, 개 교회 목회 연장선으로서의 선교인지 깊이 생각하여 방향을 다시 잡고 나아가야 할 것 같으네.

이제 5년 후면 우리 pck 필리핀 선교 40 주년을 맞게 되네. 그 40주년은 지난 40년 모세를 중심으로 한 광야 1세대가 지나가고 여호수아 시대, 가나안 정복의 새로운 40년이 오는 분기점이 되어야 하리라 생각되네. 하나님 나라 선교의 성경적 거시적 눈을 열어 연대하고 연합하여 나보다 우리가 , 우리보다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선교적 의식과 자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모세처럼 선배 선교사들은 여호수아 세대를 키워내고 1세대 보다 더 나은 세대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 주어 오직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게나.

이 마지막 추수기에, 보내는 교회 혹은 교단 그리고 보냄 받는 선교사들이 개 교회 , 교단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 나라 선교로 나아가야만 하지 않을까? "눈을 들어 하늘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오는 데."

차훈 목사/총회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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