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개편, 왜 어려운가?

누진제 개편, 왜 어려운가?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6년 08월 30일(화) 13:42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매년 여름이면 전기요금 누진제가 첨예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다. 그런데도 전기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산업통상자원부는 매번 요금제 개편을 미루어 왔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지경에 이르고서야 산업부는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에 국민이 체감할만한 개편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모두가 원하는 전기세 개편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전기를 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에서 전기는 경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면서도 희소한 생산요소였다. 개인과 가계는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생돼야만 했다. 오일쇼크 이후에는 에너지의 사용처를 관리할 필요가 더 절실해 지면서 가파른 전기세 누진제가 도입됐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최대 11.7배나 차이나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요금체계였다. 당시 경제 성장을 빌미로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도였다.

그런데 국민 경제를 운용하는 정책 담당자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경제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경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기 역시 산업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한때 산업기반의 확충이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음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 경제도 상당히 성장했다. 누진제를 포함해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격차 등 개인에게 불리한 전기요금제 전반을 고칠 때가 된 것이다.

독일은 에너지 사용에서 효율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독일 국민은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에너지를 무척 절약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이 그렇듯이 누진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그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소득 하위 20%에서는 전기요금누진제가 적용되는 구간이 바뀔 때 냉방 수요가 33% 감소했다고 한다. 반면 가구소득 상위 20%는 같은 구간에서 냉방 수요를 오히려 늘렸다. 누진요금제가 자칫 돈 있는 사람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지 반문해 보아야 한다. 전기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인간이 창조주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앙에도 경제에도,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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