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 땅끝에서온편지 ] <1> 친구에게

차 훈 선교사
2016년 08월 17일(수) 13:39
▲ 필리핀 현지 아이들과 함께 한 차 훈 선교사.

오랜 만일세. 얼마 전 고국을 방문하고 사역지인 필리핀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 '아, 이제 집에 가는구나'라며 긴장이 풀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필리핀이 내 나라, 내 집 같아 도리어 편하고, 한국은 마치 외국인이 낯선 땅에 대해 느끼는 긴장감이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묘한 감정에 잡혀 있었던 적이 있었지.
 
기실 선교사는 어디서나 이방인인 것 같으이. 사역지에서나 심지어 고국에서조차.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너무나 빨리 변화를 거듭하는 낯선 모습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길가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촌스러운 모습에서도.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나 동문들, 그리고 방문하는 고국 교회들에게도 예전 같지 않은 뭔가 모를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감이 드는 상황에서도. 그리고 사역지에서 마저 문득 '당신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상황을 만날 때에도.
 
선교사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그것을 묻는 것조차 구차한 것일까? 선교사는 보냄을 받아 떠나는 사람일지언정 돌아올 고국은 없는 사람들인가? 그 땅에 뼈를 묻어야 하는 영원한 그 나라가 본향인데 무슨 고국 타령이냐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 나 역시 나그네 인생으로서 주께서 주신 일 감당하다가 어느 곳에서든 홀연히 불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호사스러운 기대감으로 후갑(後甲)을 살아가고 있지만. 벌써 우리 PCKMP 필리핀 선교도 35주년이 되었고 일찍이 이 땅에 왔던 선교사들의 은퇴가 줄지어 있을 터인지라 은퇴 매뉴얼을 만들어서 선교사 은퇴 이후 나타날 여러가지 현안들 즉 후원교회와 은퇴 및 후임 선교사 간의 관계 문제, 현지인 리더쉽 이양 문제, 재산권 이양 문제, 사역의 연속성 문제, 은퇴 선교사 관리 문제 등 교통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이제야 속속 나오고 있네. 현재까지는 출구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적당히 알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시작은 잘하고 열심히 하지만, 마무리는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으이. 뒤가 흐린 게지. 그동안 잘 했든 못 했든 자신이 사역한 것들을 역사로 정리하고 마무리하여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터인데 한국교회나 세계선교부는 차치하거라도 정작 당사자들인 선교사들조차 이 사람 저 사람 은퇴를 앞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라 치면…글쎄 기록을 남기려고 준비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저 막연한 생각들뿐이지. 소위 선교 연착륙(mission soft landing)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네. 어떤 선교사는 그래도 한국에 유산도 있고 집도 장만해 두어서 은퇴하면 한국 돌아가 살겠다는 사람, 한국엔 그야말로 집도 무엇도 없으니 그냥 사역지에서 눌러 앉아 끝까지 사역하다 죽겠다는 사람, 또 누구는 아이들이 제3국 어느 나라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거기 가서 손주 봐주며 남은 생을 내려놓겠다는 사람도 있네.
 
선교지 이야기 첫 편지를 날리며, 출구전략 운운하여서 좀 김새는 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무용담처럼 선교 사역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끝에 가서 정작 해야 할 말을 못할까 싶어 이야기 순서를 거꾸로 잡아 보았네.
 

하고 싶은 말도 중요하겠지만, 해야 할 말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겠지. 다음에 봄세나.


필리핀 안티폴로에서.

차훈 목사
총회 파송 필리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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