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학교 이야기

농촌학교 이야기

[ 목양칼럼 ]

김영진 목사
2016년 06월 07일(화) 15:39

나는 지금 농촌에서 목사로 당연한 삶을 살고, 더해서 초등학교 스쿨버스 기사로 중학교 전교생합창단 지휘자로, 문화 기획자로 살고 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일이 더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지난 23년간 농촌 목회의 결과로 내게 주어진 일이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일 중 하나가 교회학교와 농촌학교를 엮는 일이다. 아시다시피 농촌은 아이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그 여파가 농촌학교의 폐교로 나타나고 있다. 시온교회가 있는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이 도입된 1982년부터 문을 닫은 전국의 초중고교는 3725개교에 이르고 앞으로도 현 교육부 정책 기준으로 보면 2747개교가 폐교대상이다. 대다수가 농촌 지역 학교들이다. 당연히 농촌의 교회학교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 시온교회에 부임하면서부터 교회학교와 농촌학교에 관심을 가졌다. 교육 문제가 농촌해체의 주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학교 활동을 통하여 특히 문화 부분의 부족한 교육을 보충하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겨울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문화여행이었다.

관광버스 한 대를 전세내서 전국의 문화 유적지와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 프로 스포츠 경기장, 각종 박물관, 방송국, 대학로 연극 관람, 인사동 탐사 등을 했다. 아이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면서 지역의 건강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현실 앞에서 작은 농촌교회의 힘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역 초등학교가 통폐합대상이 되었고, 지역민들이 흔들렸다. 2006년 12월에 지역민들과 학부모들이 시온교회에 간절한 요청을 했다.

그 결과 시온교회에서 운영 중이던 공부방이 지역 초등학교 방과후학교가 되었다. 교우 중에서 피아노, 영어, 컴퓨터, 한문 과목 선생님을 파송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10년째 스쿨버스 기사 노릇이다. 통폐합 절차를 밟으면서도 학교 아이들을 모두 교회학교 아이들로 여기기 시작했고, 날마다 아침과 오후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온교회만의 교회학교를 열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KBS에서 이런 학교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면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전교생합창단을 만들었다.

그 후 초등학교가 정상화 된 뒤에도 합창단 활동은 피아노 바이올린 교육과 함께 학교의 필수 과정이 되었다. 현재 지역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똑같이 학생 수 45명을 유지하고 있다. 음악 교육이 초등학교에서 끝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교장 선생님들과 의논을 했다.

우리 지역만이라도 음악만큼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 과정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농촌이지만 그래도 음악을 비롯한 문화 부분에서 교회가 농촌학교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중학교에도 전교생합창단이 생겼다. 그리고 마땅한 지휘자가 없어서 내가 지휘를 맡았고, 수요일 오후에는 힘이 솟구치는 중학생들을 앞에 놓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중학교 아이들 45명의 얼굴이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실제로도 이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되기 이전부터 교회학교를 비롯한 곳곳에서 활동한 모습을 계속 사진에 담고 있다. 10년째 내가 운전하는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있다.

몇 년 전에는 300여 장의 사진을 추려서 '7년을 담은 희망의 노래'라는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 아이들의 상당수는 지역 내 다른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날마다 나와 만나고 있으며 노래하고 있으며, 때로 마을 곳곳으로 여행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간절한 농촌에서 이 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농촌교회는 이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구별 없이 사랑하고, 잘 자라도록 가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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