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를 향하여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를 향하여

[ 땅끝에서온편지 ] <1>부르심

김옥실
2016년 06월 02일(목) 16:50
▲ 아트와 메리 데이비스 선교사 부부와 함께한 필자(중앙).

선교의 소명을 받고 1989년 7월, 한국외항선교회를 통해 국제AIM에 조인하여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언어와 타문화권 선교훈련을 받은 후, 곧바로 추운겨울 하얀 눈 덮인 런던 히드로공항을 벗어나 아프리카 케냐 땅을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1991년 2월 7일 미지의 나라 케냐 땅을 처음 밟게 되었다. 
 
나이로비 조모케냐타 공항에 도착하니 영국인 선교사 줄리안과 레이첼 잭슨 부부가 마중을 나왔다. 아프리카는 내게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픽업트럭을 타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노라니, 녹색빛 나무들 틈 사이로 험루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찬란하며 푸르름과 신선함과 평온함이 극치를 이루었다.
 
1990년 어느날, 케냐를 알지 못하고 있었을 그 때에 난 아직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케냐 행정관인 아트 데이비스로부터 온 한통의 편지가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AIM본부에 도달했다. 나를 케냐로 난민 사역을 위해 보내달라는 요청의 레터였다.
 
피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우간다, 에티오피아, 수단, 르완다, 소말리아 등 주변국가들로부터 전쟁과 기근, 가난, 질병의 요인에 의해 케냐로 피난온 이들이었다. 대부분이 국경지대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다가 건강상의 문제 및 학업을 위해 수도인 나이로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생업이 어렵고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들은 Full Status, Mandate, Aslyum Seeker 등 세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케냐 정부와 UNHCR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위는 오직 Full Status멤버들이었다. 이들은 케냐에서 일자리를 얻으며 주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난민들이다. 그러나 Mandates는 일시적으로 케냐에 머무를 수는 있으나 언젠가 본국 혹은 제3국으로 떠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Asylum Seeker들은 아직 공식적인 지위가 주어지지 않은 위기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받아들여진 난민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 사회적 어려움의 문제를 모두 안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 피난민들은 이에 속한 부류였다.
 
레이첼 잭슨 선교사가 이미 시작한 피난민 사역(Hope Craft)에 조인하여 협력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미국인 여 선교사 그래스챈(Grathchen)이 합류했다. 우리는 둘 다 싱글인 여성선교사였다. 잭슨 부부선교사는 40여 년간 우간다와 케냐 등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던 터였다. 우리는 남겨진 피난민 사역을 전수받아 그룹성경공부, 상담, 가정방문 그리고 먹거리 제공을 위한 일을 최선으로 배웠다.
 
재래식화장실과 시궁창에서 흘러 넘쳐나는 더러운 오물들로 악취 냄새 풍겨나는 열악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의 삶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아이들은 방치된 상태에서 하루종일 저희들끼리 놀며 지내고 있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이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1993년 10월 5일. 피난민어린이들을 위한 '에벤에셀 사역'이 오픈되었다. 잔디가 깔린 정원과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한 가정집을 월세로 임대하여 난민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쾌적한 공간을 마련했다. 슬럼지역에서 살고 있는 피난민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치원 어린꼬마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찾아들었다. 연령별로 구분하여 성경공부, 찬양, 율동 그리고 언어훈련을 우선 실시했다.
 
아이들은 좋아했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케냐 문화권에 적응하며 1년 후 어떤 아이들은 현지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차츰 작은 희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돕는 봉사자들도 생겼고 사역이 날로 기쁘게 전개되었다. 이렇게 에벤에셀 피난민 어린이사역은 10년동안 나이로비에서 전개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옥실 목사
총회 파송 케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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