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들꽃이야기

[ 목양칼럼 ]

김영진 목사
2016년 05월 31일(화) 15:46

'가슴에 안으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

이 글은 몇 년 전에 출간된 '배부르리라'라는 책 속에 소개된 시온교회에 관한 제목이다. 돌아보면 모든 것을 꽃으로 가슴에 안고 목회를 했다. 꽃, 특히 들꽃은 농촌에서 목회하는 23년을 유쾌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처음엔 농촌에 대해서 무지했으며, 꽃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했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잠깐 있을(?) 요량으로 농촌에 왔는데 어느 날, 내가 사는 농촌을 도무지 모른다는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다니기 시작했고, 틈틈이 사진기로 꽃을 담았다.

농촌 산야의 들꽃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들꽃을 통해 농촌의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한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노루귀, 매발톱, 제비꽃, 돌단풍, 금낭화, 할미꽃, 노루오줌, 꿩의 다리, 은방울꽃 등. 그리고 잡풀로 여겨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던 논둑의 개불알풀까지 새롭게 각인시켜서 함께 하는 구성원이 되었다.

여기에는 특히 교우들의 역할이 컸다. 무지한 목회자에게 꽃 이름 하나하나를 교육하면서 교회에 정갈한 들꽃정원을 조성하고, 각 가정에서도 정성껏 가꾸어서 봄이 되면 그 꽃들을 모아서 들꽃축제를 십 년 넘게 열고 있으니 말이다.

들꽃 축제의 시작은 가정마다 키운 꽃들이 너무 예뻐서 한군데 모아 함께 감상하자고 하면서부터였다. 교우들 가정에 심방을 다녀보니 가정마다 화분에 예쁜 꽃들을 잘 키우고 있었다. 전체 가정을 헤아려보니 제법 꽃의 개체가 많았다. 교우들은 자기 가정의 것밖에 볼 수 없지만 목사는 전체 가정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교회 마당에 꽃이 잘 피는 시기를 골라 교우들의 화분을 모아서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뜻밖에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렇게 한두 해를 거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꽃 감상과 더불어 우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소개하고 농촌의 즐거움을 나누는 매개체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들꽃축제를 하면서 특별히 천대받는 풀, 보통 잡초라고 불리는 꽃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우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받고 싶었고, 또 가만히 보니 잡초의 꽃들이 상당히 예쁘기 때문이었다. 잡초의 꽃은 상당수가 작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만 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성가신 애물단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원하지 않은 장소에 난 잘못된 풀로 여긴다. 한마디로 경제성 있는 작물의 이해와 상반되는 잡초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풀에 대한 인간 중심의 정의이다.

이런 인간 중심의 정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농촌의 몰락을 불러왔다. 그렇지만 잡초를 사진으로 확대해서 담아보면 그 모습이 뚜렷하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서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깨우침을 준다. 달개비(닭의장풀)의 멋진 사진을 본 농민이 오히려 묻는다. '이게 무슨 꽃이냐?'고. 달개비라고 말해주니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감탄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한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결국 농촌목회는 농촌과 농민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데 그 지향점이 있다. 들꽃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다. 예수님도 들꽃 같은 우리를 주목하셨다. 무시하고 없애려고 하면 이 세상에 풀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품으려고 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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