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을 받았습니다.

용돈을 받았습니다.

[ 목양칼럼 ]

박상기 목사
2016년 05월 25일(수) 11:25

땀을 뻘뻘 흘리며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교회가 떠나갈 듯 '단결'을 외치는 김 집사를 기쁨으로 맞아주었다. "목사님 오늘도 여섯 건 했습니다." 얼굴의 미소가 여느 때 보다 순박하고 천진해 보였다.

손에는 "싱싱하게 보여서 목사님 생각이 나서 사왔습니다"라며 방울토마토가 든 까만 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이며 뭔가를 꺼내더니 "영적인 아버지를 잘 섬겨야 한다는 감동이 와서 작은 것이지만 드립니다"라며 꼬깃꼬깃 구겨진 10만원 권 수표 한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꽤 이른 시간, 곱슬머리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산발머리를 치켜 올린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속으로 '아침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릴까? 쯧쯧'하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냈는데 "누구십니까?"라며 나를 빤히 보는 게 아닌가? 순간 '술김에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건가?'하는 불길한 예감에 "목사입니다"라고 하자 뜻밖에도 교회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그를 데리고 교회로 와 횡설수설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김 집사를 만났었다.

그날도 점심 때가 되어 순댓국 한 그릇을 대접하고 데려다 주기 위해 집에 들어섰는데 침상 머리에 까만 성경 두 권이 놓여 있었다. 그날 그는 나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어린 아들 둘을 남기고 아내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서글펐던 이야기, 시골교회에서 안수집사 피택까지 받았을 정도로 열심도 있었지만 임직식 전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골아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임직이 무산 되었던 이야기, 교회를 등지고 고향을 떠나 방탕하며 살았던 이야기, 법사로 사주를 봐주며 돈을 벌어 아들 둘을 출가시켰던 이야기, 법사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떠났다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아 성경을 끌어안고 울면서 지냈던 이야기….

그 날도 삶을 포기하기로 하고 평소 친분 있는 무당과 밤 새 술을 마신채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양육을 받고 완전한 새 사람이 되었다. 만 1년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직 성전을 드나들며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하셨다.

웃고 울며 소통하는 가운데 영혼의 얼룩진 누더기를 벗어던지고 찌든 때를 벗겨냈던 순간들, 생활고로 인해 남모르게 겪어야 했을 고통의 순간들, 다시 찾은 믿음의 길에서 지불해야만 했던 갈등과 또 다른 소외들, 수도 없이 쏘아대는 사단의 화전(火箭)들로 인해 치러야만 했던 영적 전쟁들을 기도와 말씀으로 이겨내고 순종하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믿음을 지켜내고 있다.

그를 위해 오랜 시간 "주님께서 우리 김 집사를 다시 붙잡아 놓으셨으니 재정적으로도 책임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던 중 '우유판촉'을 하기로 했단다. 오랫동안 그 일을 하신 분이 김 집사가 노방전도를 하며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추천을 해 주었단다.

밑천 없이, 간섭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특히 여자분들을 상대로 사주를 봐주던 경험으로 이미 체질화(?) 되어있고, 지루하지 않고, 무엇보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딱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믿어져 기도하며 응원해주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낯선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믿음과 집념으로 감당해내고 있는 모습이 감사하다. 무엇보다 김 집사에게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위해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더욱 감사하다. 김 집사님으 보며 세속에 찌든 누더기 옷을 한꺼풀 벗겨내면 주님이 빚어낸 좋은 작품이 드러날 것이라는 감동을 받았다.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며 잃어버렸던 은혜도 회복하고, 실족시켰던 영혼들도 구원하며 하나님께 사랑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옛날 블레셋 진영에 있는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을 마시고 싶었던 다윗을 위해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왔으나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하여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던 마음이 내게도 부어져 김 집사가 쥐어준 용돈을 주님께 부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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