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군종감 대회 참관기 (上)

제26차 군종감 대회 참관기 (上)

[ 기고 ] 종교 떠나 상호 공존과 상생이 주 관심사

이정우 목사
2016년 03월 17일(목) 10:46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세계 군종지도자 대회에 총회의 지원으로 다녀왔다 
세계 군종 지도자 대회는 매년 유럽과 북미에서 돌아가며 개최한다. 이번 대회는 한국을 비롯해 30여  개국의 군종 지도자들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필자와 함께 군종 대령 3명이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법사/신부). 세계 군종지도자 대회는 올해로써 26차가 되고 있다. 이 대회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주도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28개 회원 국가(북아메리카 미국, 캐나다/유럽 26개국)가 구성체로 되어 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호주 및 뉴질랜드가, 아프리카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석하고 있다.

이 회의의 중요성은 세계 각 나라 군종병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과 각 나라에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회의에 참석한 군종지도자들은 세계의 군종병과를 한눈에 들여다보면서 각 나라의 이슈들을 통해 각각의 나라가 병과와 군선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회의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암스텔담에서 다루었던 이슈는 종교다원주의였다(pluralism). 종교 상호 이해와 존중, 그리고 배려에 관한 이슈들이 주 현안이었다. 각 나라에서 온 군종 지도자들은 기독교, 천주교, 동방정교, 유대교, 무슬림, 힌두교 지도자들이었다.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군에서 군종장교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라마다 군종병과를 운영하는 특징들이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군종장교가 임관하여 군 유니폼을 착용하고 군종 병과원으로 임무 수행을 하고 있도록 하는 반면, 동방정교인 그리스를 비롯한 동유럽 종교 지도자들은 군종장교로서 임관을 하지 않을 뿐더러 군 유니폼을 입지 않고 성직자 옷을 착용하고 군종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임관없이 유니폼 미착용 상태에서 군 안에서 교구개념으로 신자들을 관리하고 돌보고 있었다.

이와 달리 프랑스처럼 군종장교 임관은 하지 않지만, 군 유니폼을 입고 임무 수행을 하고 있는 나라도 있었다. 이들 모두는 국가에서 임관한 정식 군인 및 장교가 아니지만 봉급을 지급하고 있다.

한편, 세계 대부분의 군종병과는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기나 하는 일이 적지만 병과에 장군을 보유하고 다부지게 자신들의 전문성 확대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군종병과 크기는 세계 2위 수준이다(약 500여 명). 미국이 약 2600여 명, 영국과 아프리카가 약 300여 명, 카나다 150여 명, 호주 150여 명, 이스라엘 100여 명, 뉴질랜드 70여 명. 이들 모두는 높게는 별 둘, 낮게는 별 한 개가 수장이 되어 임무수행을 하고 있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북미 역시 종교다원주의에 관해 대단한 관심과 고민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서로가 각을 세우지 않고 상호 공존, 상생을 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그들의 주 관심사였다. 종교의 문제는 공존을 넘어서 생존의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군에서 어떻게 상생을 위해 화합과 조화를 이루며 군에 같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군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가 주관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회원들 중 특이한 점은 'Humanitarian'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인도주의자, 인본주의자다. 군종장교로 이들을 임관시켜 병과원으로 하고 있는 나라가 네덜란드를 비롯해 노르웨이 등의 나라였다. 보통 우리가 군에서 군종병과에 대한 정의를 말할 때 '종교를 통해 장병들의 사생관 확립과 가치관 형성에 기여하는 병과'로서 정의한다. '종교성'을 반드시 포괄해서 군종병과를 말한다.

그런데 개최국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의 나라는 군종장교로서 '인본주의 군종장교'(Humanitarian)가 활동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 군에서 군종장교로서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인도주의 군종장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으니 그들 대답은 "군에서 신자 보다 비신자들이 더 많다. 신자들은 성직자들이 돌봐 준다고 한다면 비신자들에게 전쟁 임무를 수행하고 해외 파병될 때 이들을 정신적으로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가?"였다. 그래서 그들의 하는 일은 인간의 잠재된 잠재력과 의지를 일깨워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장병의 군 생활 뿐 아니라, 전시 임무 수행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군종학교 처장으로 있을 때 교육 입교한 군종장교들에게 이따금씩 역설했었던 말이 있다. '참호 속에 무신론자가 없다'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은 군종장교가 왜 군에 있어야 하는 지, 장병들에게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사생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즉 장병 신앙의 필요성에 대해 압축해 주는 말이다. 이 말을 자주했었고 이 말을 신념처럼 간직하고 있는 필자에게 유럽에서의 이러한 변화들은 생소함을 넘어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했다. 즉 '우리도 앞으로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에게도 먼 미래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번 회의를 통해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선교적으로 느낀 점은 유럽과 북미가 가고 있는 방향과 포커스는 '공존' 논리였다. 그리고 그 범위와 한계 내에서 선교라는 말은 '종교 상호 존중과 인정'에 박제가 되어 그 어떤 시도도, 그 어떤 진전도 없어 보였다. 소위 우리 현장이 갖고 있는 아직 식지 않은 군 복음화 열정은 그들에게서 찾아 볼 수도 없거니와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군 선교 환경은 아직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군 선교 현장도 예전과 달리, 쉽지만은 아닌 참으로 녹록치 않은 환경이다. 외적으로 2만불이 넘은 시대에 신앙의 무용론, 포스트모더니즘 풍조. 내적으로 '무종교도 종교', 인권 차원에서 강요 금지, 여기서 강요의 한계를 어디까지 정해야 되는 것인지 권유, 혹은 권면도 강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 지금까지 통해왔던 모든 틀과 방식을 전면 고민해야 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청년들이 주님을 만나는 생명의 향연이 제일 풍성한 현장이 군 선교 현장이다. 아직은 선교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는 곳이다.
이정우 목사 육군 군목단장(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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