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온편지]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땅끝에서온편지]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 땅끝에서온편지 ] <5>죄인을 통한 선교

이희운 선교사
2016년 02월 17일(수) 09:47

삐냐교회의 강제 폐쇄와 함께 또 다시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삐냐지역 선교를 포기하지 못한 필자는 매주일 차에 가족을 태우고 가서, 전에 40일간 새벽마다 정탐하며 기도하던 공터에서의 주일예배를 8개월 간 이어갔다. 필자와 동역했던 솔로몬 전도사마저 경찰을 피해서 잠적하면서, 첫 삐냐교회에서의 1년 6개월 사역의 결과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랜 수고가 정말 순식간에 처음으로 돌아갔다.
 
기한 없이 공터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리차드 전도사란 현지인을 소개받았다. 그를 교사로 삼아 늦었지만 현지 언어인 깐나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삐냐교회의 재건은 잠시 보류하고, 2001년에 방문했던 시골 마을 소나가나할리에서 교회를 개척해 리차드 전도사에게 전담을 시켰다. 인도의 법 때문에 선교의 전면에 나설 수 없던 필자가 리차드 전도사, 스티븐 청년과 협력 선교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주 시온성교회의 후원으로 지은 작은 교회가 40여 명의 어린이와 20여 청장년으로 가득찼다. 4명의 새신자가 첫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부흥의 분위기도 잠시, 카스트제도를 힘입은 일부 교인들의 전횡으로 리차드 전도사가 사임하게 됐고, 다시 교인들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필자는 다시 삐냐 공단지역에 독채를 임대해 리차드 전도사가 생활하며 삐냐교회를 재건하도록 지원했다. 힌두교인들의 핍박과 정부의 반개종법으로 인해 시기를 살피던 중 지역 학교의 교실 하나를 예배처소로 허락받아 8개월 만에 삐냐교회를 재건했다.
 
여섯번째 예배처소였던 학교 교실에서 한 달 동안 예배드리며 전에 함께했던 메리 양과 20여 명의 슬럼 신자들은 다시 만나게 됐다. 곧 일곱번째의 예배처소가 확정되면서 교회는 다시 부흥세로 돌아섰다. 리차드 전도사 부부의 열정과 달란트, 그리고 당시 15세와 10세였던 필자의 둘째 딸 청로와 셋째 딸 드보라의 주일학교 헌신, 사랑에 목마를 지역 천민들의 열정, 그리고 한국에서의 기도와 후원은 금세 삐냐교회를 8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회복시켰다. 또한 필자가 후원하며 돌본 현지인 목회자 8명이 철저하게 헌금, 전도, 기도, 운영을 배워나갔다. 얼마 후 일곱번째 예배처소의 건물주와 갈등이 생겨 다시 다른 상가로 이전하게 됐고, 교인은 100명 가까이 늘어났다.
 
필자는 목사 안수를 받은 리차드 목사를 한일장신대학교 아태신학대학원에 보내 석사학위를 받도록 했다. 사역자들의 헌신적 열정과 사랑을 통해 현재 300명이 출석하는 삐냐교회는 '죄인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증거가 됐다.

이희운 선교사/총회 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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