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도피처'역할 회복

약자의 '도피처'역할 회복

[ 이슈앤이슈 ]

박만서 mspark@pckworld.com
2016년 01월 05일(화) 16:49

한국교회는 과연 오늘 우리 사회의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최근 일반 뉴스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 있다. 노동법 개정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며며 시위를 주도했던 민주노총 관계자가 불교 시설에 들어가 24일간 은신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종교계는 다양한 의견들을 내어 놓고 있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찬반으로 나누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찬반의 내용에는 '종교 시설이 정치의 장으로 사용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종교가 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장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에는 '도피성'이라는 것이 있다. 민수기 35장 6~32절과 신명기 4장 41~43절, 19장 1~13절, 여호수아 20장 2절 21장 13~38 등에 이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민 35:11에는 도피성을 두는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부지 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신명기 19장에는 부지중 살인한 자에 대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벌목중에 실수로 도끼가 자루를 빠져 나가 함께 일하던 사람을 죽게 한 경우이다. 즉 도피성은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피해 있는 곳이며, 이 곳을 관리하는 관리인은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한 중간 역할을 감당하도록 했다.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 민주와 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0, 80년대에 약한자들의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기독교회관은 항상 경찰관들이 둘러싸고 지키는(?) 건물이 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억울함을 호소하던 노동자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 그러면 기독교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주장을 중제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NCCK 사무실이 있던 한국기독교회관 7층에는 농성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시설을 찾는 발길이 뚝끊어졌다. 그들의 찾는 곳은 가톨릭의 명동 성당이나, 민노총 관계자가 찾아든 불교 시설이 그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필자는 정치적이거나 피신처를 찾아 들어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왜 한국교회가 약한 자들의 도피성(피난처)이 더이상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한국교회는 대사회 위상 추락이라고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약한 자 소외된 자들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교회가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 우리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청년들이 교회를 찾아 들어 왔던 때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은 썰물과 같이 교회와 등지고 빠져 나갔다. 교회가 '헬조선'을 이야기하고, '가나안성도'를 자처한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도피성이 되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시는 교회로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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